1986년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효소 PDE-5를 억제하면 협심증이 완하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약 개발을 시작한다. 그러나 임상시험을 시작하면서 발기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비아그라’다. 화이자는 “2상 시험이 이뤄지고 나서야 신약 개발의 확신을 갖게 됐다” 고 밝혔다. 신약개발의 평균 성공확률이 1만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1994년부터 3년 동안 4천여명의 발기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21건의 임상을 마치고서야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 승인을 얻는다.
이처럼 신약을 개발하려면 약효를 검증하는 다단계의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국적 제약회사가 여러나라에서 실시하는 다국가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시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다국가 임상이 95건으로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90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임상시험은 4만1천여 건이며, 시장 규모는 334조원이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5일 보건복지부와 향후 3년간 260억원의 임상연구비 등을 지원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화이자는 국내에 투자하는 연구개발비를 지난해 약 80억원에서 올해 190억원으로 늘리고, 다국가 임상도 지난해 보다 11건 늘어난 33건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노바티스도 지난해 29건에서 올해 45건으로 국내 임상을 늘일 예정이다. 한국GSK는 2005년 24건의 임상을 진행했고 올해에는 30건 정도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다국가 임상이 늘어난 이유는 제약회사의 필요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약을 팔려면 한국인을 상대로 한 임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노바티스 홍보팀 안병희 이사는 “한국에는 대형병원이 많아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수의 환자 모집이 가능해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제약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임상이 늘어난 이유다. 서울대 의대 방영주 교수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아시아인들이 잘 걸리는 위암, 간암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가 임상수가 늘어나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국내 의료계에 투자자금과 선진기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방 교수는 “다국가 임상에서 쌓이는 노하우는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데 공헌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의 임상 결과를 신뢰할 만큼 우리의 의료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의료진이 다국가 임상 총괄책임자로 지명되는 일도 늘고 있다. 지난 13일 성균관 의대 김선우 박사가 노바티스의 당뇨병 관련 다국가 임상 총괄책임자로 지명됐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국가 임상은 대개 3상 이상이다. 이 때문에 신물질 연구 등 중요한 과정은 외국에서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들러리만 서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신약 개발의 노하우를 갖추기 위해서는 초기임상(1상, 2상)부터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물질을 얼마나 개발하고,어떤 병에 적용할지 결정하는 일이 모두 초기 임상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성수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초기임상을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과 장비가 필요한데 그런 여건을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초기 임상이 많지 않다”며 “초기임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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