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군불 때는데 서민은 ‘냉골’
최근 한국 경제는 사상 최고치 주가에 1분기 성장률 6.2%(전년동기) 등 경제지표가 장밋빛 일색이다. 그렇지만 내 지갑은 두툼해지지 않는다. 또 유가상승, 환율하락 등 외부 악재가 쌓이는데도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어떻게 된 일인가?
소득-성장률 격차 벌어지고 양극화 깊어진 탓
올해 1분기 국내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로 무려 6.2%(전기대비 1.3%)에 이르는 견실한 상승세를 보였는데도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리 따뜻하지 않다. 소득이 별로 늘지도 않았고, 소비심리가 뚜렷이 살아났다는 얘기도 없다. 왜 그럴까?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자료를 보면, 올 들어 석달 동안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1.2%(전년 동기 대비는 4.7%) 성장했다. 지난해 3~4분기 증가율인 1.0%, 1.1%와 비교하면 안정적인 증가세가 이어진 셈이다. 한은은 “내수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민간소비 증가 덕에 경기회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내수시장 회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신용카드 판매 증가세나 자동차 등의 내구재·백화점 판매 증가세를 보면 소비심리가 악화되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초 한자릿수 증가율에 그쳤던 신용카드 구매액은 올 들어 1~3월 동안 매달 17~18%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3월 자동차 내수판매 대수도 올 들어 처음 10만대를 돌파하면서 전년 동월 대비 9.7%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올 들어 여러 장르(품목) 매출이 고루 증가하고 있고 특히 남성 신사복 판매가 급증했다”며 “경기에 민감한 중산층 남성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민간소비가 이렇게 지표상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데도 서민들이 체감을 못하는 것은, 우선 실제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소득이 경제지표의 상승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실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내총소득(GNI) 증가율은 지난 1분기 -0.1%(전분기 대비)를 기록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로는 1.9%로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6.2%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격차다. 고유가 탓에 수출 단가가 수입 단가보다 낮아지는 교역조건 악화현상이 나타나면서, 수출 한 단위로 구매할 수 있는 수입 물량이 적어져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경제 양극화의 골이 깊어진 탓도 있다. 한은이 지난달 24일 조사해 발표한 ‘1분기 소비자동향조사(CSI) 결과’를 보면, 월 300만원 이상 소득계층의 생활형편 기대지수가 93이었던 데 반해 월 100만원 미만 소득계층의 경우는 69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유가·저환율 영향으로 국민들의 구매력 기준 소득이 최악으로 떨어진데다, 성장의 과실이 고용증가와 서민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아 체감경기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②온통 악재인데 성장률은 ‘호재’
환율이 고유가 상쇄…수출도 품질경쟁 단계
‘중국쇼크’도 과장…“환율·유가 점점 영향 커질 것”
지난 4월 중순부터 국제유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원-달러 환율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정부가 지난 연말 예상했던 유가·환율 연평균 전망치는 54달러(두바이유 기준), 달러당 1010원이었다. 유가는 지난달 28일 현재 64.75달러, 환율은 943.3원이다. 벌써 한참 빗나갔다.
그런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5.0%에서 5.3%로 더 올렸다. 한국금융연구원도 4.7%에서 5.2%로 0.5%포인트나 올렸다. 엘지경제연구원은 2일 수정 전망을 내놓으면서 성장률(4.7%)은 건드리지 않았다. 수수께끼다.
유가, 환율, 차이나 쇼크 등 3대 악재는 우리 경제의 대응능력과 함께 봐야 한다. 국제유가는 지난 연말 53.49달러에서 올 들어 21.1%나 올랐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소비자가격(ℓ당)은 1462원에서 1530원으로 4.7% 오르는 데 그쳤다. 환율하락이 유가상승분을 상당 부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1.6% 올라 안정세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물가상승을 막는데다 기업들이 비용절감 등으로 유가상승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최근 <월스트리트>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국제유가 최고치는 제2차 석유파동 시기였던 1980년 4월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97.55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환율하락을 이유로 ‘경상수지 적자 반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금융연구원은 “우리나라 수출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비가격(품질 등) 쪽으로 상당 부분 이전됐고, 수출이 (환율보다) 세계 경제여건에 더 좌우되는 형태로 변했다”는 점을 들어 환율하락세에도 적자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중국의 금리인상과 성장률 하락 전망 등 ‘차이나 쇼크’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게 연구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8.2%에서 9.5%로 상향조정했다.
그러나 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뜯어보면 그렇게 느긋해할 사항만은 아니다. 성장률 전망치가 올라간 이유는 1분기 성장률(6.2%)이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하반기 전망치는 오히려 낮아졌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3분기는 5.1%, 4분기는 4.4%로 예상했다. 애초 전망치인 하반기 4.7%보다 0.05%포인트 낮은 것이다. 엘지경제연구원은 애초 하반기 성장률을 4.9%로 봤으나, 수정치에서는 4.0%로 크게 낮췄다.
신민영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괜찮았으나, 앞으론 유가·환율이 점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 경제는 유가·환율의 긍정·부정적인 영향력 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하락이 수출에는 악영향을 주지만, 내수에는 긍정적 효과를 주는 측면이 있고, 유가상승이 수출과 내수에 끼치는 악영향을 우리 내부에서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소득-성장률 격차 벌어지고 양극화 깊어진 탓
각종 내수지표 증가율 추이
‘중국쇼크’도 과장…“환율·유가 점점 영향 커질 것”
주요기관 경제성장률 연말 전망치와 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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