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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우리는 날마다 기적같이 살아남는다”

등록 2006-05-10 19:36

앤 푸아 싱가포르 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왼쪽부터), 타티야나 하인 영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마르타 투르크 슬로베니아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2층 프레스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앤 푸아 싱가포르 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왼쪽부터), 타티야나 하인 영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마르타 투르크 슬로베니아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2층 프레스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anaki@hani.co.kr

세계 여성경제인 총회 참석한 3인의 대화

성공한 경영자인 동시에 자식을 둔 어머니이기도 한 여성 경제인들이 지난 1~3일 ‘세계 여성경제인 서울총회’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한겨레>는 지난 3일 이 행사에 참석한 타티야나 하인 영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마르타 투르크 슬로베니아 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앤 푸아 싱가포르 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 등 여성 경제인 3명을 만났다. 이들은 가족과 일의 조화, 편견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여성들은 더 윤리적이고 창의적인 경영자가 될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마르타 투르크=유럽에서 여성 기업인 비율은 29% 남짓에 불과하다. 슬로베니아의 여성 기업인 비율은 19%, 임원 이상의 고위직에서의 여성은 4%밖에 되지 않는다.

타티야나 하인=영국도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영국 100대 기업 대표중 여성 사장은 딱 한명인데, 그는 미국인이다. 영국은 아직도 귀족과 평민이 나뉘는 신분사회다. 그래서 밑바닥에서 시작해 최고위층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앤 푸아=싱가포르의 최근 경향은 아이들이 다 커 여유가 생긴 50대 여성들이 대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안 도와주니 집안 일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기업인 올리비아 럼은 미혼이다.

투르크=바로 그게 문제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난 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창 때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수십년 동안 집에 있었다면 나중에 마음먹는다고 되겠느냐.

하인=나도 늦깍이다. 회계사로 일하다 44살이던 87년에 한 디자인 회사의 지분을 사고 파트너가 됐다. 그런데 94년 경영을 책임지던 파트너가 급사했다. 내가 그냥 회사를 팔고 지분을 챙겨 떠나는 것보다 고생하던 직원들을 챙겨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래서 경험도 없는데 경영자로 나서게 됐다.


푸아=나는 조금 빨랐다. 미혼이던 27살 때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출판, 패션, 제조업, 여행·교육 관련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가장 애착을 갖고 주력하는 분야는 환경 관련 사업이다. 신기술을 이용한 손바닥 만한 필터로 전기 없이 어디서나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게 한 상품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미화 5천달러만 있으면 100가구가 사는 캄보디아 한 마을에 2년 동안 식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투르크=나는 아이가 너무 많아서 사업을 시작했다. 38살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슬로베니아 최대 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늦둥이를 낳자 탁아소에서 받아주질 않는 거다. 너무 화가 나서 창업을 결심했고, 살아남기 위해 낮에는 엄마로, 밤에는 편집·번역자로 남들의 두배를 살았다. 아이들은 편집하는 내 책상 아래서, 컴퓨터 옆에서 뒹굴며 컸다.

하인=여성들은 사업 시작부터 다르다. 은행은 남성 기업인들에게 대출할 때 담보를 요구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항상 요구한다. 오죽하면 기타 파텔 등 여성 기업인들이 여성들에게만 융자를 하고, 여성 친화적인 방식으로 경영자문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엔젤 네트워크’를 만들었겠는가.

투르크=가족과 일의 조화다. 지금도 나는 아침 4시에 일어나 음식을 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를 학교에 보낸 다음 8시30분에 일을 시작한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여전히 가족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단위로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캐리어를 쌓는 동시에 출산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

푸아=우리는 항상 어떻게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것 같다. 남자들은 항상 골프치고 술마실 시간을 남겨 둔다. 반면 우리는 아이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또 여성 기업인들은 사업을 하면서 돈도 벌지만 가족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는 여성들이 경영하는 친환경·사회공헌 관련 기업들이 꽤 많다.

투르크=여성들의 강점은 창의력이다. 여성들은 별다른 도움 없이 일을 시작해야 하니 창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때 나는 가난해서 내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것이 ‘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시작이었다.

하인=바디샵을 만든 아니타 로딕이 좋은 예다. 최근 로딕은 바디샵을 최근 에스티 로더에 팔아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나랑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돈 한푼 안 물려주고 모두 사회사업에 기부할 것’이라고 공언하더라. 그는 엄청 부자지만 큰 차도 안 몰고, 엄청 유명한데도 ‘직접 집으로 전화해달라’고 말한다.

푸아=여성들은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비즈니스를 하다보니 멀티태스팅에 강하다. 또 문제 해결 능력이 강하다. 또 약자 입장에 서있던 경험 때문에 더 사려깊은 점도 사업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인=우리 할아버지는 제정러시아의 공작이었는데 1919년 혁명 이후 쫒겨나 3천명의 하인을 거느리다가 졸지에 이국의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신세로 전락했다. 할아버지는 영국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할머니가 바느질로 온 식구를 먹여살렸다. 할머니는 내게 항상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라’며 누구라도 독립적으로 삶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푸아=여성 경제인들은 무엇보다 프로가 돼야 한다. 또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으로 소통이 빨라졌지만, 빠르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싱가포르의 젊은 여성 기업인들 가운데 비즈니스 계약 관련 소식을 문자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인=출판이나 홍보같은 소프트한 산업보다 제조업에 더 많이 진출해줬으면 한다. 영국의 여성 경제인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욕심이 많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가 있다. 그들은 너무 공격적이라 거의 남성이 돼 버렸다. 결과는 외로움이다. 그들은 집, 차, 직업이 있지만 남성들이 그들을 두려워해 짝을 찾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

투르크=슬로베니아에서 올여름 세계 여성 경제인 회의를 개최한다. 그곳에서 네트워킹을 더 하고 싶다. 인터넷도 좋지만 소통은 여전히 말로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노하우다.

정리/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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