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에 걸쳐 제주와 인연 항공사업 진출로 이어져
가격 낮춰 새 수요 창출 기존 비행기의 절반 크기
55명만 태우면 이익나요”
가격 낮춰 새 수요 창출 기존 비행기의 절반 크기
55명만 태우면 이익나요”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제 우리나라에도 국내선 위주의 저가 항공사 하나쯤 나올 때가 됐습니다.”
세제, 샴푸, 치약 등 생활용품 회사로 친숙한 애경이 항공사업에 뛰어들었다. 애경과 제주도의 합작 회사인 제주항공이 다음달 초 김포-제주 노선 취항을 시작으로 부산, 양양 등 국내노선에 비행기를 띄울 예정이다. 기존 항공사보다 30% 가량 싼 ‘저가항공’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했다지만 ‘생활용품 기업’ 애경으로서는 야심적인 비상이다.
항공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한 채형석(46) 애경그룹 부회장의 출사표는 의외로 담담하다. “오래 전부터 유럽과 미국 저가 항공사들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 봐왔습니다. 나라가 비좁기는 해도 이런 항공사 하나쯤 생길 것으로 봤고, 생긴다면 제주를 기반으로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5대에 걸쳐 이어진 제주와의 인연도 항공사업 진출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관직에 있던 채 부회장의 고조부가 제주로 귀양살이오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증조부모 묘소도 제주에 있고, 조부는 제주현감까지 지냈다. 애경 창업주이자 선친인 채몽인 전 회장도 제주서 태어났다.
채 부회장도 항공사업 진출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양대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채 부회장의 관점은 다르다. “제주항공의 탄생은 경쟁을 심화시킨다기보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채 부회장은 이를 ‘역할분담론’으로 설명한다. “대형 항공기를 투입하면서 국내선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기존 항공사들은 국제선에 전념하고, 소형 항공기로 운영되는 제주항공은 국내선 위주로 영업하면 서로 좋지 않을까요.” 제주항공의 기종은 캐나다 봄바디어의 프로펠러 제트기다. 정원 74명으로, 기존 항공사들이 국내선에 쓰고 있는 보잉이나 에어버스 기종의 절반 크기도 안된다. 기름값이 덜 들어 한번 뜰 때 정원의 75%인 55명만 태우면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채 부회장은 제주행 항공기가 순항하면 다른 중소 공항으로 노선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항공사들이 가격 인하로 맞대응하면서 경쟁이 과열될 가능성도 있다. “기존 항공사들이 제주항공을 경쟁상대로 봐 초기부터 ‘죽어봐라’는 식으로 값내리기를 하면 서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쪽으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애경의 항공사업 진출은 채 부회장이 경영에 입문해 기획한 세번째 작품이다. 미국 보스톤대 유학을 마친 1985년부터 애경에서 일을 시작한 채 부회장은 1993년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2004년에는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유통업의 경우 애경백화점 구로점에 이어 수원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에이케이(AK)면세점으로 이어지면서 탄탄한 수익기반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부동산개발은 향후 유통업 진출을 위한 좋은 터 잡기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부친의 사망으로 10살 때부터 ‘장남’의 역할을 맡아야했던 채 부회장은 남다른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경영권은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애경이 좋은 회사로 영속하길 바라지만, 언제까지 채씨 집안만의 회사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원한다 해도 능력을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성장한다면 모를까, 이 자리를 그대로 물려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애경하면 생활용품? 매출 절반은 ‘화학’
유통·레저·항공 등 부문별 고른 성장 추구
세탁세제 ‘스파크’와 ‘퍼펙트’, 주방세제 ‘트리오’와 ‘순샘’, 중성세제 ‘울샴푸’…. 소비자들이 한번쯤은 접해봤을 만한 애경의 생활용품 브랜드들이다.
애경그룹이 1954년 비누회사인 애경유지로 출발해 생활용품 회사로 성장한 것은 맞지만, 50여년이 흐른 지금 애경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사업 분야는 바로 화학이다. 지난해만 1조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해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도료와 안료의 원료인 무수프탈산(PA)과 피브이시에 사용되는 가소제 등 듣기에 생소한 제품들이지만 주로 중국에 수출돼 짭짤한 수익원이 되고 있다. 1970년 창업주의 사망으로 부인 장영신 현 애경그룹 회장이 사업을 이으면서 자신의 대학시절 전공 분야였던 화학 부문을 추가해 오늘날의 애경유화, 애경화학, 애경정밀화학 등을 키워냈다.
지난해 애경그룹의 전체 매출은 2조원 규모다. 사업군별로는 화학이 1조원(51.2%)이고, 생활용품 부문이 3600억원(22.7%), 애경백화점과 에이케이면세점 등 유통·레저·부동산개발 부문이 6400억원(26.1%)이다. 모친인 장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이어받은 채형석 부회장은 앞으로 그룹의 부문별 고른 성장을 추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화학 부문이 줄어들면서 생활용품과 유통·레저·항공 부문이 상대적으로 신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항공사업을 키워 유통과 부동산개발 부문을 그룹의 주력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채 부회장은 “화학 부문은 과거와 같은 영화를 누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기초소재와 정밀화학 쪽을 강화하면 어느 정도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길게 보면 화학, 생활용품, 유통·레저·항공의 비중이 4 대 3 대 3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 부문은 올해 매출 300억원, 내년 500억원이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고, 예정된 항공기 8대 도입이 완료된 다음해인 2009년에는 매출 1천억원 달성이 가능하다는 게 애경쪽 판단이다.
조성곤 기자
애경의 항공사업 진출은 채 부회장이 경영에 입문해 기획한 세번째 작품이다. 미국 보스톤대 유학을 마친 1985년부터 애경에서 일을 시작한 채 부회장은 1993년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2004년에는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유통업의 경우 애경백화점 구로점에 이어 수원점, 수원애경역사, 평택역사, 에이케이(AK)면세점으로 이어지면서 탄탄한 수익기반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부동산개발은 향후 유통업 진출을 위한 좋은 터 잡기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부친의 사망으로 10살 때부터 ‘장남’의 역할을 맡아야했던 채 부회장은 남다른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경영권은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애경이 좋은 회사로 영속하길 바라지만, 언제까지 채씨 집안만의 회사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원한다 해도 능력을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성장한다면 모를까, 이 자리를 그대로 물려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애경하면 생활용품? 매출 절반은 ‘화학’
유통·레저·항공 등 부문별 고른 성장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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