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세계 최대 게임 전시회 ‘전자 엔터테인먼트 엑스포(E3) 2006’이 지난 10~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명성에 걸맞게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의 소니와 닌텐도, 우리나라의 엔씨소프트와 웹젠 등 내로라 하는 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그동안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자랑했다.
개막 첫 날 언론인 출입카드를 발급받아 비디오게임 업체들이 몰려있는 전시장(서쪽 홀)으로 들어서려는데 ‘18살 미만 입장 불가’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문구대로라면 이번 게임 전시회가 ‘성인용’이자 ‘청소년유해행사’라서 18살 미만 청소년을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긴데, 청소년 없는 게임 전시회가 가능할까?” 이런 문구는 출입카드 뒤쪽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전시회 주최측이 왜 18살 미만 청소년의 입장을 막았는지 바로 이해됐다. 컴퓨터와 게임기 성능의 향상,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 디스플레이의 고화질·대형화로 게임 화면이 영화와 다름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게다가 많은 게임이 전투를 소재로 하거나 선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총을 쏘거나 칼로 베서 죽인다. 총을 쏘거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의 경우,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린 곳에서 검붉은 피가 치솟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 모습이 게임을 끝낸 뒤까지도 생생하다.
음향효과도 뛰어나, 게임의 주인공이 돼 총을 쏠 때의 느낌이 군 복무 시절 훈련을 받으면서 실제로 총을 쏠 때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총알 발사 뒤 노리쇠가 후퇴했다가 전진하고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실제 총을 쏠 때의 느낌 그대로다. 실감을 높이는 의자와 주변장치들도 대거 등장해, 총을 쏘거나 칼로 사람을 찌르는 순간의 느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옆에서 게임을 하던 관람객은 “야 이거 군에서 훈련용으로 써도 괜찮겠는데”라고 감탄했다.
수영복 차림의 여성들을 캐릭터로 등장시켜 비치발리볼을 하는 게임 역시 그래픽 기술로 캐릭터를 선정적으로 꾸며, 남성 관람객들의 눈길을 잡았다. 야한 수영복을 입히고, 격한 동작을 할 때는 살짝 벗겨지기도 한다. 18살 미만의 입장을 막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실감을 더하는 게 게임의 경쟁력”이라며 “제품으로 출시될 때는 더욱 실감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들도 이런 점을 들어 “게임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게임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한 그래픽 기술과 게임기 성능이 거꾸로 게임 업체들을 고민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생생하게 실감이 날수록 사회적인 규제와 문화적인 거부감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온라인·컴퓨터 게임 전시회에 18살 미만은 입장할 수 없게 된 것도 한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게임 전시회도 이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임 업계가 기술개발 못지 않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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