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남서부 미초아칸주의 파닌디쿠아로라는 농촌의 옥수수밭에서 늙은 농부 부부가 잡초를 뽑고 있다. 이 마을은 나프타 이후 주민의 절반 이상이 떠났다.
정부지원·관세 없애자 미 농산물 ‘우르르르’
덤핑수출 제재 등 “협의할 수 있다”만 합의
덤핑수출 제재 등 “협의할 수 있다”만 합의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멕시코-② 흔들리는 농업 규제없앤 농업개방…제재수단도 없다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농민들에 대한 강제퇴거 작전이 펼쳐질 즈음인 이달 초, 멕시코의 한 농촌마을에서도 경찰과 농민 시위대 간에 팽팽한 대치전이 벌어졌다. 멕시코시티 북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산살바도르 아텐코. 폭스 대통령이 2002년 국제공항 신설 후보지로 이곳을 선정하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공동경작제 폐지 ‘쫓겨나는 농민’
아텐코 지역에서는 농민들의 시위가 4년여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 몇해 전 농사를 포기하고 인근 철공소에 다니는 테오도로 마르티네스(40)는 “옥수수와 콩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어렵다. 그렇지만 농토는 주민들에겐 유일한 생존기반이기 때문에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텐코의 농토는 주민 소유가 아니라 멕시코 정부 재산이다. 엄밀히 말해 농민들이 정부 땅을 점유한 채 버티고 있는 것은 불법인 셈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13년 전에 갈라졌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가입을 추진하면서 마을단위 소작농들의 농지 공동소유·공동경작(에히도)을 보장하는 헌법 27조를 1993년 폐지했다. 당시 살리나스 정부가 추진한 나프타 협상의 ‘선결과제’였다. 비농민과 외국인의 농지소유금지 제도도 철폐했다. 12개 주요 곡물에 대한 약정가격수매제 등 농업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정책도 없앴다. 농산물시장을 개방해 낙후한 농업을 현대화한다는 명분이었다.
94년 1월 발효된 나프타에 따라 멕시코는 일부 기초곡물을 제외한 대부분 농산품의 관세를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했다. 그 결과는 농산물 수입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나프타 발효 전 60억달러였던 멕시코의 농산물 수입액은 2002년부터 연평균 120억달러를 넘어섰다. 멕시코산 채소와 화훼류 등의 대미 수출은 늘었지만, 수출보다 수입 증가폭이 훨씬 크다. 멕시코 국민들이 한해에 소비하는 농산물과 가공식품류 가운데 수입품 의존율은 94년 20%에서 2004년 48%로 치솟았다. 하비에르 아길라 국립기술학교 농업부문 연구원은 “멕시코는 이제 미국산 농산물의 3대 수입국이자 미국 농산물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전락했다. 멕시코의 생산원가보다 평균 30%나 낮은 가격에 수입농산물이 들어오는데 무슨 수로 버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농산품 등 수입 10년새 28%P↑
미국과 멕시코 간 농산물의 공정한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멕시코의 농민 1인당 평균 경작면적은 미국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 농민들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실제 생산원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멕시코 시장을 파고든다. 미국 곡물회사들이 나프타에서 정한 연도별 할당량을 초과해 기초곡물을 수출하는데도, 멕시코 정부는 긴급수입제한이나 보복관세 부과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나프타 조문에 한쪽이 농산물 교역에 관한 합의를 위반해도 ‘대항조처에 대해 가맹국 간에 협의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도 멕시코 정부로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멕시코 연방경쟁위원회(CFC) 에두아르도 페레스 모타 위원장조차 “멕시코는 미국 농산물 수입업자들의 독점과 특혜를 보호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정도다.
농민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아텐코의 마을회관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늘 우리는 말한다. 이제 그만 좀 해!(Ya! Basta!)’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분노의 옥수수 옥수수로 만든 ‘국민식품’ 700%나 올라
유통·가공 국영화 폐지뒤 다국적사 장악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멕시코의 농업부문 개방 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멕시코에서 나타난 현실은 정반대다. 옥수수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곡물이다. 생산비중이나 소비량이 가장 많다. ‘옥수수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존재할 정도다. 옥수수를 으깨고 갈아서 만든 식품인 ‘토르티아’는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토르티아의 값이 지난 11년 사이에 무려 698.4%나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 옥수수 도매가격 상승률은 197.5%로, 물가상승률(348.9%)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옥수수 생산농가의 실질소득은 줄어든 셈이다. 나프타 이후 미국산 옥수수의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 증가로 옥수수 원료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도, 소비자들이 사먹는 토르티아 값은 왜 7배나 올랐을까? 원인은 옥수수 유통 및 가공단계의 변화에 있다. 나프타 이전에는 옥수수 유통·가공 산업은 ‘코나수포’라는 국영기업이 도맡아 했다. 생산자로부터 옥수수를 수매하는 가격(도매가격)은 정부 고시가격으로 고정돼 있었고, 코나수포는 기본적인 운영수입만을 유통마진으로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토르티아와 같은 최종 가공식품의 소비자가격도 도매가격 변동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유통·가공단계의 국영체제가 해체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민간기업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길이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노바티스, 아벤티스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나 대형 식품회사들, 민사와 빔보 등 멕시코 재벌 계열 식품회사들이 옥수수 유통시장을 장악해 과점체제를 구축했다. 옥수수 재배 농민들의 소득은 감소하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 과점기업의 수익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순빈 기자
멕시코-② 흔들리는 농업 규제없앤 농업개방…제재수단도 없다
농산품 등 수입 10년새 28%P↑
멕시코시티 교외에 있는 미국 카길사의 곡물 유통·저장시설. 나프타 발효 후 카길을 비롯한 다국적 곡물메이저들이 멕시코 유통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분노의 옥수수 옥수수로 만든 ‘국민식품’ 700%나 올라
유통·가공 국영화 폐지뒤 다국적사 장악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멕시코의 농업부문 개방 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멕시코에서 나타난 현실은 정반대다. 옥수수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곡물이다. 생산비중이나 소비량이 가장 많다. ‘옥수수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존재할 정도다. 옥수수를 으깨고 갈아서 만든 식품인 ‘토르티아’는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토르티아의 값이 지난 11년 사이에 무려 698.4%나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 옥수수 도매가격 상승률은 197.5%로, 물가상승률(348.9%)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옥수수 생산농가의 실질소득은 줄어든 셈이다. 나프타 이후 미국산 옥수수의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 증가로 옥수수 원료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도, 소비자들이 사먹는 토르티아 값은 왜 7배나 올랐을까? 원인은 옥수수 유통 및 가공단계의 변화에 있다. 나프타 이전에는 옥수수 유통·가공 산업은 ‘코나수포’라는 국영기업이 도맡아 했다. 생산자로부터 옥수수를 수매하는 가격(도매가격)은 정부 고시가격으로 고정돼 있었고, 코나수포는 기본적인 운영수입만을 유통마진으로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토르티아와 같은 최종 가공식품의 소비자가격도 도매가격 변동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유통·가공단계의 국영체제가 해체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민간기업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길이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노바티스, 아벤티스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나 대형 식품회사들, 민사와 빔보 등 멕시코 재벌 계열 식품회사들이 옥수수 유통시장을 장악해 과점체제를 구축했다. 옥수수 재배 농민들의 소득은 감소하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 과점기업의 수익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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