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도박 오늘의 대박
Econo 사람/인티그런트 고범규 사장
‘셋톱박스의 수신용 모듈을 휴대전화에 쏙 집어 넣을 수는 없을까?’
텔레비전을 휴대전화 속으로 불러들인 디지털미디어방송(DMB)폰. 이 첨단 모바일 기기에 없어서는 안될 고주파(RF) 칩은 5년 전 젊은 벤처기업가의 도발적인 상상에서 출발했다. 방송 전파를 수신해 증폭·변환시켜 주는 고주파칩은 디엠비폰의 핵심 부품이다.
‘손바닥 만한 모뎀을 휴대전화 안에 넣는다니….’ 고범규(38) 사장이 처음 프로젝트안을 끄집어냈을 때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 직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주변 회로부품을 축소해 손톱보다 작은 칩으로 슬림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전력소모를 절반 이상 낮추는 것도 당시 기술로서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투자는커녕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엉뚱한 소리나 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들어야 했다.
“디엠비란 말이 나오기 훨씬 전이니까 휴대전화로 텔레비전을 보는 시대가 올 것이란 이야기가 황당하게 들렸겠죠. 모바일 기기의 진화를 확신한 저로서는 포기할 수 없더군요.”
2002년 말 미국 인텔에서 투자 의사를 전달해왔다. 국내에서 등을 돌린 미래 첨단사업을 국외 투자자로부터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고, 3년 만에 모바일 텔레비전용으로 압축한 초소형 저전력의 방송 수신칩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을 앞서 간 기술은 단번에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위성 및 지상파 디엠비 서비스가 시작되자 제조사들로부터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 애니콜을 비롯해 위성 디엠비폰의 70%, 지상파 디엠비폰의 50%에 인티그런트의 칩이 내장돼 있다. 개인휴대단말기(PDA)와 휴대용 멀티미디어재생기(PMP) 등 다른 디지털 모바일 기기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잠재력도 높다.
미친 사람 취급 설움 당하다
DMB폰 칩 세계 첫 상용화
서비스 시작되자 주문 쏟아져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퀄컴의 핵심 칩을 대체하는 기술 개발을 맡았는데, 퀄컴을 따라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퀄컴이 일정 주기로 핵심 기술을 변형시키는 바람에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사장시킬 때가 많았죠.”
우리나라가 휴대전화 강국이지만 원천기술을 지닌 미국 퀄컴에 판매액의 일부를 기술료로 주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퀄컴에 기술료로 빠져 나간 돈만 3조원이 넘는다. 고 사장은 “기왕 기술을 개발할 바에야 새로운 부가기능을 창출할 원천기술에 도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를 거쳐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가 지난 2000년 독립해 시스템반도체 회사를 세운 이유다.
직원수 80명 남짓한 인티그런트가 현재 출원한 디엠비 칩 관련 특허는 110건이 넘는다. 회사 설립 이후 3년간 적자를 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170억원에 순익을 70억원이나 올렸다. 한달 전에는 일본 수출시장도 뚫었다. 그러나 아직은 헤쳐가야 할 길이 적지 않다. 경쟁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고, 치열한 표준화 경쟁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인티그런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모바일 시장을 이끄는 글로벌 아이티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고 사장은 “검증된 시장에서 비슷한 기술로는 승부를 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미친 사람 취급 설움 당하다
DMB폰 칩 세계 첫 상용화
서비스 시작되자 주문 쏟아져
디엠비폰에 들어가는 인티그란트의 초소형 고주파칩. 인티그란트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