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20조원대 분식회계 등 혐의로 징역 10년과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은 뒤 입원중인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분식회계·사기대출 명백한 범죄행위”
김우중(70)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법원의 중형 선고는 ‘대우 사태’의 책임이 그룹 경영의 최고 책임자인 김 전 회장에게 있음을 분명히했다는 의미가 있다. “분식회계 등은 당시 관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김 전 회장의 항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동안 재계는 ‘관행론’을 근거로 김 전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해 왔다.
또한 경제범죄에 대한 엄단이 법원의 새 기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두산 총수 일가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을 질타한 뒤 법원은 ‘화이트칼라 범죄’ 재판에서 잇따라 엄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재벌 총수에게는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던 관행을 깨고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전윤수 성원건설 회장은 항소심에서 대기업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검찰이 구형한 액수보다 약 2조원 적은 21조4484억원의 추징을 선고했다. 구형과 판결 시점의 환율 차이를 고려해 추징액수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이 실제로 추징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추징은 변제받을 피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권에 대출채무를 지고 있는 김 전 회장에게는 추징보다는 채무 변제가 우선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해 9월 김 전 회장을 기소하면서 그의 은닉재산을 상당 부분 찾아냈지만, 금융기관의 채권 행사를 위해 예금보험공사 등이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11개 채권금융기관이 대우그룹에 부실대출로 입은 총손실액은 3조8333억원으로, 이 가운데 김 전 회장의 책임이 있는 부분은 1554억원이다. 대우그룹의 부실채권을 사들인 자산관리공사가 김 전 회장한테서 받아야 할 돈이 8천억원에 이르고, 김 전 회장 등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들의 수백억원짜리 소송도 진행 중이다.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이 발견된다 해도, 이 돈을 다 갚기 전까지는 추징이 불가능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은 판결이 확정되면 이미 형이 확정된 대우 전직 임원 7명과 함께 이 돈의 추징 책임을 지게 된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집행과는 임원 7명의 형이 확정된 뒤 ‘대우 추징금 대책팀’을 만들고 추징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재까지 추징된 액수는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의 급여 5200만원과 이동원 전 대우 영국법인장의 부동산 경매대금 800만원 등 모두 6023만3천원뿐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추가 은닉재산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검 중수부에서 김 전 회장 기소 전에 은닉재산을 이미 샅샅이 추적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전 회장에게 선고된 천문학적인 액수의 추징은 상징적인 ‘선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추징은 범죄에 대한 징벌 성격의 벌금과 달리 납부하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할 수도 없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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