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마지막 ‘금녀’의 분야는 어디일까? 여성 정치인, 여성 임원, 심지어 여성 장성들도 늘어났지만 산업 현장에서의 ‘여성 공장장’은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이에 <한겨레>는 이례적으로 다국적 자동차와 담배 기업의 현장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 두명을 만나 그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들었다.
“공장으로 보내달라” 자청 여성 명예 걸고 현장 지휘
BAT코리아 한성주 이사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한성주(36·사진) 이사는 요즘 기분이 좋다. 그가 생산부문 책임자로 있는 경남 사천 담배공장이 전세계 품질 평가 1위, 인원수 대비 생산량 2위로 부상하며 방문객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본사가 놀라워해요. 2003년 공장을 돌리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이렇게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거죠. 본사에서는 한국인을 뛰어나게 만드는 독특한 ‘코리언 유전자(DNA)’가 있다고 농담을 합니다.” 다국적 기업의 담배 공장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24시간 가동되는 사천 공장은 던힐, 보그 등 담배를 연간 250억 개비 가량 생산할 수 있다. 공장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품질부터 안전까지 다양하다. “처음 공장을 세울 때 담배산업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200여명 되는 노동자들의 출신 회사가 109곳일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다국적 담배회사 눈총 알지만 그만큼 사회환원 더 앞장서요” 그는 사천 공장의 유일한 여성 간부이기도 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한 이사는 93년 한 제지업체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 99년 BAT로 자리를 옮겼다. 여성 공학도마저 흔치 않던 시절, 그의 존재 자체가 가는 곳마다 화제였다. “사명감과 오기가 있었어요. 제지회사에서도 여자가 별로 없으니까 내가 잘 못하면 다시는 여자를 안 뽑지 않을까, 이런 우려로 일을 시작했어요.” BAT에 온 뒤 그는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해 새로 짓는 사천공장 준비팀으로 파견됐다. 초기부터 그는 목표를 높게 세웠다. 단순히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생산 전략 등 관리자 역할까지 넘보는 ‘지식 노동자’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사원 교육에 매달린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최근 저희 생산직 사원들이 자체적으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 내용을 공장을 방문한 아시아 지역 품질관리 전문가들 앞에서 직접 영어로 발표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2004년 우수 사원 교환 프로그램의 대상자로 선정돼 말레이시아 공장에 1년간 근무하기도 한 한 이사의 올해 최대 목표는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는 혁신으로 생산성 부문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다국적 담배 회사에 대한 따가운 눈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역 불우이웃 돕기와 문화활동 후원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이요? 공장장, 사장도 좋지만 어느 자리에서나 꼭 걸맞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미혼인 그는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인라인 타고 공장 누벼 어디든 신속 부품 공급
BMW코리아 고현주 과장
서울에서 차를 타고 한시간 밤 남짓 걸리는 경기도 이천 장호원, 숲이 울창한 이곳에 베엠베(BMW)그룹 코리아 부품전문 물류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물류센터는 수입차 최대 규모다. 5천평 남짓한 큼직한 건물 안에는 크고 작은 부품이 5~6층으로 층층히 쌓여 있다. 이곳에 있는 부품만 2만7천 단위, 액수로도 수백억원대에 이르지만 모두 고현주(37·사진) 과장의 손바닥 안에 있다. 지난 2월 문을 연 이곳의 책임자인 고 과장은 날마다 시간과 싸운다. 물류센터장으로서 그의 임무는 적정한 부품 재고를 유지하며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자동차 등의 부품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부품 신청은 실시간으로 들어옵니다. 수도권은 재고가 있으면 4시간 당일 출고가 가능하고, 전국 어디라도 24시간 안에 부품을 배달할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로 부품을 가져올 때도 있고, 급할때는 말레이시아나 일본쪽에 손을 벌릴 때도 있어요.” 베엠베 물류센터에서는 하루 컨테이너 1~2개 분량의 부품을 소화하지만, 직원은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16명에 불과하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체계적인 배열과 동선 배치, 전산화로 초보 직원이라도 2~3분 내에 원하는 부품을 찾아낼 수 있게끔 해놓은 것이다. “현장서 사람 중요성 깨달아 두려움이 이젠 자긍심으로” “기계적인 분류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분류도 중요합니다. 과학적인 분류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과감하게 변화를 도입합니다.” 고 과장은 전산시스템을 구축한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으로 이전 공장 근무 경험이 전무했다. 그런 만큼 물류센터 책임자 자리는 큰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변수가 새롭게 다가와요. 사무실에서 전산시스템을 만들 때는 몰랐는데, 현장에서 발로 뛰니까 확실히 달라요.” 날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정도로 업무량은 많지만 고 과장은 공장 안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닐 정도로 일을 즐긴다. 꾸준히 성장하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역동성에 독일 본사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인천 물류센터에 비해 규모도 곱절 가량 늘어났지만 내부에 최첨단 공기제어시스템과 승강기 등을 갖춰 일하는 이들을 최대한 배려했습니다.” 지금은 최대 용량의 60%만 가동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시설을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한 고 과장은 6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많지 않은 자동차 업계에서 살아남는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와 성실함이다.“지난 4개월은 두려움에서 자긍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 이곳을 극동아시아 최고의 물류센터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한성주(36·사진) 이사는 요즘 기분이 좋다. 그가 생산부문 책임자로 있는 경남 사천 담배공장이 전세계 품질 평가 1위, 인원수 대비 생산량 2위로 부상하며 방문객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본사가 놀라워해요. 2003년 공장을 돌리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이렇게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거죠. 본사에서는 한국인을 뛰어나게 만드는 독특한 ‘코리언 유전자(DNA)’가 있다고 농담을 합니다.” 다국적 기업의 담배 공장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24시간 가동되는 사천 공장은 던힐, 보그 등 담배를 연간 250억 개비 가량 생산할 수 있다. 공장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품질부터 안전까지 다양하다. “처음 공장을 세울 때 담배산업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200여명 되는 노동자들의 출신 회사가 109곳일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다국적 담배회사 눈총 알지만 그만큼 사회환원 더 앞장서요” 그는 사천 공장의 유일한 여성 간부이기도 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한 이사는 93년 한 제지업체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 99년 BAT로 자리를 옮겼다. 여성 공학도마저 흔치 않던 시절, 그의 존재 자체가 가는 곳마다 화제였다. “사명감과 오기가 있었어요. 제지회사에서도 여자가 별로 없으니까 내가 잘 못하면 다시는 여자를 안 뽑지 않을까, 이런 우려로 일을 시작했어요.” BAT에 온 뒤 그는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해 새로 짓는 사천공장 준비팀으로 파견됐다. 초기부터 그는 목표를 높게 세웠다. 단순히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생산 전략 등 관리자 역할까지 넘보는 ‘지식 노동자’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사원 교육에 매달린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최근 저희 생산직 사원들이 자체적으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 내용을 공장을 방문한 아시아 지역 품질관리 전문가들 앞에서 직접 영어로 발표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2004년 우수 사원 교환 프로그램의 대상자로 선정돼 말레이시아 공장에 1년간 근무하기도 한 한 이사의 올해 최대 목표는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는 혁신으로 생산성 부문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다국적 담배 회사에 대한 따가운 눈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역 불우이웃 돕기와 문화활동 후원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이요? 공장장, 사장도 좋지만 어느 자리에서나 꼭 걸맞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미혼인 그는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인라인 타고 공장 누벼 어디든 신속 부품 공급
서울에서 차를 타고 한시간 밤 남짓 걸리는 경기도 이천 장호원, 숲이 울창한 이곳에 베엠베(BMW)그룹 코리아 부품전문 물류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물류센터는 수입차 최대 규모다. 5천평 남짓한 큼직한 건물 안에는 크고 작은 부품이 5~6층으로 층층히 쌓여 있다. 이곳에 있는 부품만 2만7천 단위, 액수로도 수백억원대에 이르지만 모두 고현주(37·사진) 과장의 손바닥 안에 있다. 지난 2월 문을 연 이곳의 책임자인 고 과장은 날마다 시간과 싸운다. 물류센터장으로서 그의 임무는 적정한 부품 재고를 유지하며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자동차 등의 부품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부품 신청은 실시간으로 들어옵니다. 수도권은 재고가 있으면 4시간 당일 출고가 가능하고, 전국 어디라도 24시간 안에 부품을 배달할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로 부품을 가져올 때도 있고, 급할때는 말레이시아나 일본쪽에 손을 벌릴 때도 있어요.” 베엠베 물류센터에서는 하루 컨테이너 1~2개 분량의 부품을 소화하지만, 직원은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16명에 불과하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체계적인 배열과 동선 배치, 전산화로 초보 직원이라도 2~3분 내에 원하는 부품을 찾아낼 수 있게끔 해놓은 것이다. “현장서 사람 중요성 깨달아 두려움이 이젠 자긍심으로” “기계적인 분류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분류도 중요합니다. 과학적인 분류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과감하게 변화를 도입합니다.” 고 과장은 전산시스템을 구축한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으로 이전 공장 근무 경험이 전무했다. 그런 만큼 물류센터 책임자 자리는 큰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변수가 새롭게 다가와요. 사무실에서 전산시스템을 만들 때는 몰랐는데, 현장에서 발로 뛰니까 확실히 달라요.” 날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정도로 업무량은 많지만 고 과장은 공장 안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닐 정도로 일을 즐긴다. 꾸준히 성장하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역동성에 독일 본사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인천 물류센터에 비해 규모도 곱절 가량 늘어났지만 내부에 최첨단 공기제어시스템과 승강기 등을 갖춰 일하는 이들을 최대한 배려했습니다.” 지금은 최대 용량의 60%만 가동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시설을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한 고 과장은 6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많지 않은 자동차 업계에서 살아남는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와 성실함이다.“지난 4개월은 두려움에서 자긍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 이곳을 극동아시아 최고의 물류센터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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