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의 정책 구상이 취임 100일을 넘기면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 등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규제에 역점을 뒀다면, 권오승 체제는 분야별 공정경쟁의 원리를 도입하는 데 힘을 쏟는 모습이다. 독과점 상태의 재벌 대기업들을 향해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고, 그동안 소비자를 위한 경쟁 자체가 없었던 방송·통신·금융 등 규제 산업에도 ‘경쟁’을 강조하며 공정거래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독과점 경쟁력 없다=지난 24일로 취임 100일을 넘긴 권 위원장은 그동안 외부 강연 때마다 ‘경쟁 원리’를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강연 때마다 경쟁 원리를 주창했다”며 “이는 시장 질서의 기본 원리가 경쟁인데도 우리 문화는 경쟁과 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나 주체를 보면 대부분 힘있는 쪽”이라며 “스스로 인식해 협조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법집행을 강화해 경쟁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문화 정착을 위한 공정위의 법 집행 강화는 먼저 ‘힘있는 쪽’, 다시 말해 개별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재벌 계열 대기업들을 향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지방 상공인들은 여전히 부당 하도급 문제를 호소한다”며 “국내 독과점으로 얻어낸 경쟁력으론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외에서 모두 글로벌스탠더드를 지켜달라”고 일침을 놓았다.
공정위 관심사는 소비자=방송·통신·금융 등 그동안 경쟁정책에서 배제됐던 비경쟁 분야도 앞으로 공정위의 강도 높은 감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 위원장은 “이들 분야는 규제산업에서 경쟁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만큼 경쟁원리의 정착이 시급한 분야”라며 “규제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경쟁이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면 소비자의 피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위원회 등 규제 당국과의 ‘이중규제’ 논란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은 기업의 처지에서 보지만 공정위는 소비자 처지에서 바라보는 만큼 관점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권 위원장은 “방송의 경우 지상파, 위성, 케이블 등 지금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지상파 안에서, 케이블 안에서의 분야별 경쟁 여부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며 “각 사안별로 소비자 처우를 위한 공정 경쟁 여부가 공정위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공정위의 새 정책 방향에 대해 중소기업과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상당한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다만 경쟁 강화만으로는 재벌의 순환출자 폐해를 막기 어려운 만큼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대체하는 작업은 별도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경쟁법학자 출신으로서 권 위원장의 진전된 독과점 규제를 기대한다”며 “다만 재벌 소유지배 구조를 개선할 대안이 마련되고 확고히 자리잡을 때까지는 출총제 폐지를 앞서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 위원장도 “경쟁 정책 강화는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나 순환출자와는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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