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와 계약 자율권 존중
제품 개발 모든 과정에 참여
기술자들과 긴밀한 공조체제
제품 개발 모든 과정에 참여
기술자들과 긴밀한 공조체제
[디자인빅뱅] ③ 덴마크 뱅앤올룹슨
산업디자인계에서 디자인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는 명품 오디오 회사 뱅앤올룹슨(B&O·비앤오). 덴마크 북쪽의 시골마을 스트루어에 자리잡은 이 회사에서는 정작 회사에 고용된 디자이너를 찾아보기 어렵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과 계약을 맺어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하는 회사가 디자인을 외부에 맡긴다? 의문은 디자이너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린다. 프리랜서로 1965년부터 뱅앤올룹슨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는 “디자이너가 회사에 고용돼 있으면 기술자와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발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이나 기술자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디자인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서 외부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최고 권위의 자리는 디자이너의 몫=뱅앤올룹슨에서 최고 권위의 자리는 최고경영자가 아닌 디자이너의 몫이다. 제품 개발 초기부터 디자이너가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실제로 비앤오의 야심작으로 꼽히는 ‘베오랩 5’의 경우 데이비드 루이스가 ‘스피커=세워놓는 커다란 관’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세계 최초로 원뿔 모양의 스피커를 제안해 상품화했다. 형식과 절차를 떠나 디자이너의 제안이 실질적으로 새 제품 개발로 이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루이스는 “디자인은 제품 콘셉트 개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 개발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며 “비앤오가 새로운 콘셉트 개발에 뛰어난 것은 이런 과정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기술진은 연구와 실험을 수없이 되풀이해 상품화할 수 있게 보조한다. 경영진은 아주 시장성이 없거나 괴상한 아이디어에 대해 재고해보라는 의견을 내지만 디자인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톨번 소렌슨 회장은 “비앤오 제품은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것도 꾸준히 팔릴 정도로 수명이 길다”며 “이런 장수 비결은 1㎜의 두께도 타협하지 않는 디자이너의 고집을 존중하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소개했다.
꿈의 디자인을 이루는 곳, 아이디어 랜드=이처럼 비앤오가 디자이너를 존중하고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해서 디자이너들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비앤오의 ‘아이디어 랜드’와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한다. 디자인·제품 콘셉트 개발부서인 아이디어 랜드는 외부 디자이너와 비앤오의 기술자들이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제품에 대한 기초를 다지는 회의장소라고 할 수 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 랜드의 개발 과정에 참여한다. 이들은 평소에는 각자 다른 프로젝트에 속해 있다가 제품 개발이 결정되면 선택돼 그룹을 형성한다. 하지만 디자이너, 기술자, 경영자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아이디어 랜드에 모이면 각자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인 만큼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 방식의 차이로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아이디어 랜드 책임자 플레밍 페더슨은 “아이디어 랜드에 소속된 콘셉트 개발자(디벨로퍼)들이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이를 기술자들의 의견과 조율하는 구실을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경영진의 인식과 시스템, 그리고 아이디어 랜드를 통한 수평적인 토론과 협의야말로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는 중요한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원뿔모양 스피커 파장 멀리보내
디자인으로 기술 보완하고 기능 높여
뱅앤올룹슨은 그렇게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다. 지난해 매출액 5973억원으로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에 비하면 작은 중견기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생활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세계적인 회사다. 유럽 지역 디자인 협회와 단체들이 주는 여러가지 권위있는 상을 90차례나 받았다.
뱅앤올룹슨 디자인의 특징은 그저 ‘아름다움’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 각 제품의 디자인이 첨단 기술을 보완해 제품의 개성을 표현하고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뿔 모양의 스피커 ‘베오랩 5’는 ‘어쿠스틱 렌즈 테크놀러지’라는 기술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이 회사 홍보 담당자 기터 블래실드는 “스피커 상단에 2개 이상의 디스크를 수평으로 설계한 디자인이 음의 파장을 조절해 소리를 멀리까지 뻗어나가게 한다”며 “청취자는 스피커와 멀리 있어도 가까이서 듣는 것처럼 원음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뭇잎 모양 스피커 ‘베오랩 4000’은 앞부분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독특한 디자인이 아름다움을 충족시키는동시에 움푹 들어간 뒷부분이 앰프의 과열 현상을 해소해준다. 오디오 박스 안에 6장의 시디를 한 줄로 배열해 원하는 시디로 클램퍼가 옮겨가며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베오사운드 9000’은 ‘눈으로 듣는 오디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예술적 디자인과 혁신적 기술을 함께 갖춘 뱅앤올룹슨은 전세계 소비자들에게서 수십년에 걸쳐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15개국에 직접 진출해 1400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60여개국에는 현지 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윤영미 기자
베오사운드 9000
베오랩 5
꿈의 디자인을 이루는 곳, 아이디어 랜드=이처럼 비앤오가 디자이너를 존중하고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해서 디자이너들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비앤오의 ‘아이디어 랜드’와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한다. 디자인·제품 콘셉트 개발부서인 아이디어 랜드는 외부 디자이너와 비앤오의 기술자들이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제품에 대한 기초를 다지는 회의장소라고 할 수 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 랜드의 개발 과정에 참여한다. 이들은 평소에는 각자 다른 프로젝트에 속해 있다가 제품 개발이 결정되면 선택돼 그룹을 형성한다. 하지만 디자이너, 기술자, 경영자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아이디어 랜드에 모이면 각자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인 만큼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 방식의 차이로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아이디어 랜드 책임자 플레밍 페더슨은 “아이디어 랜드에 소속된 콘셉트 개발자(디벨로퍼)들이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이를 기술자들의 의견과 조율하는 구실을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경영진의 인식과 시스템, 그리고 아이디어 랜드를 통한 수평적인 토론과 협의야말로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는 중요한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원뿔모양 스피커 파장 멀리보내
디자인으로 기술 보완하고 기능 높여
베오랩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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