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업계 대변”…같은 자문위원장이 2003년안 뒤집어
증권선물거래소 산하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위원장 나동민 박사)가 13일 우리나라 생보사는 주식회사인 만큼 주주가 아닌 보험계약자에게 상장 차익을 배분할 근거가 없다는 내용의 상장방안 초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이번 안은 1999년과 2003년 상장자문위의 안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생보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17년을 지루하게 끌어온 생보사 상장문제가 다시 암초에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문위 공청회 안=자문위가 이날 공청회에서 내놓은 안의 핵심은 생보사가 상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이며, 과거 보험계약자에 대한 배당도 적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보사가 상장을 한다해도 계약자는 주주가 아닌 채권자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계약자에게 상장 차익을 배분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자문위는 생보사의 성격과 관련해 △법적 형태가 주식회사이고 △유배당보험을 판매했다고 해서 상호회사로 볼 수 없으며 △계약자가 주주로서의 경영위험을 부담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생보사는 주식회사라고 판단했다. 자문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계기법을 활용해 과거 계약자 배당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검토한 결과 과소배당을 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자문위는 1990년 자산재평가 이익중 계약자 몫으로 배분된 30%의 내부유보액(삼성생명 878억원, 교보생명 662억원) 성격과 관련해 자본이 아니라, 부채적 성격을 지닌다고 판단했다. 다만 자문위는 계약자에게 돌려줄 내부유보액의 규모와 처리방안, 그리고 유배당상품과 무배당상품의 자산 구분계리(회계상 계정분리)는 앞으로 추가로 검토해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문위 안에 따르면 계약자들은 상장 차익을 전혀 배분받을 수는 없게 된다. 다만 내부유보액만 돌려받을 수 있는데, 그 규모는 1990년 이후 평균 이자율을 감안하면 삼성생명의 경우 1천억원대에 불과하다.
시민단체 반발=참여연대와 경실련은 “이번 안은 업계 편향적이고 미리 예정된 결론에 끼워맞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두 단체는 생보사 성격과 관련해 △1980년대 초 실질적 파산상태에 처한 경우에도 주주의 자본확충이 이뤄지지 않았고 ‘비싼 보험료와 과소배당’ 방식으로 계약자들에게 경영위험이 전가된 점 △정부도 1990년 재평가처리지침에서 생보사를 상호회사와 주식회사의 성격이 혼재된 것으로 인정한 점 등을 들어 주식회사 속성을 100%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두 단체는 이번 안이 1999년과 2003년 자문위의 안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낸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경실련 권영준 교수는 “과거에는 두차례 모두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배분할 근거가 있다고 판단을 했다”며 “나동민 박사는 2003년에도 자문위원장을 했는데 어떻게 입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생보업계 쪽은 환영 일색이다. 생명보험협회는 이날 “상장 관련 현안을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했다”며 “자문위가 제시한 방향으로 상장 방안을 확정해 조기에 시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문위는 앞으로 공청회를 한차례 더 연 뒤 최종보고서를 증권선물거래소에 제출할 예정이다. 거래소는 이를 토대로 상장규정 개정안을 마련한 뒤 정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자문위 안에 대해 정부 차원의 의견은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쪽은 앞으로 토론회와 국회 등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해 나간다는 방침이어서 생보사 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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