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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에 뿌리내린 유럽계 기업 두 CEO

등록 2006-08-16 18:47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

에릭 닐슨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사장과 알란 플럼 롤스-로이스 한국 사장은 공통점이 많다. 두 회사 모두 손꼽히는 유럽계 기업으로 한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양사 모두 한때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해당 부문을 매각한 상태다. 또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외국계 기업들로 꼽힌다. 이들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집중과 투명성 확보가 필수”라며 “교육제도 개혁과 여성인력 활용 등이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노조와 동반자 되려면 뭣보다 경영 투명해야”

한 기업이 있다. 재벌기업 소속으로 한때 잘나갔지만, 수익성 악화로 ‘일등주의’를 표방했던 그룹에서 ‘계륵’같은 존재였다. 결국 모그룹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 회사를 외국 기업에 팔아넘겼다.

다른 기업이 있다. 6년 만에 세계시장 점유율이 4%에서 8%로 올라간 회사, 인수 1년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이 회사는 처음 언급한 회사와 같은 곳, 볼보건설기계코리아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학자들이 연구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자주 꼽힌다. 짧은 기간 동안 한 기업이 겪을 수 있는 희망과 절망을 골고루 맛보았을 뿐 아니라 노사화합, 제조업 부흥 등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11일 서울 한남동 볼보 사옥에서 만난 에릭 닐슨(47·사진) 사장은 이 회사의 성공 비결에 대해 ‘투명성’과 ‘집중’이란 단어를 제시했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은 회사를 불투명하게 경영하고, 노동자들을 동반자로 보지 않습니다. 이긴 자가 다 가져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니 노사갈등이 격해질 수밖에 없지요.” 새로 만들어진 노조 대표자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경영진이 “축하한다”며 “스웨덴의 노동운동을 보고오라”고 등을 떠민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재무책임자로 있던 닐슨은 “노조가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의 핵심은 경영의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월별 실적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는 인수 뒤 10여종의 제품군을 ‘굴삭기’ 하나로 과감히 정리했다. 굴삭기 하나에 연구개발 인력 등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자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고품질 제품이 나왔다. 삼림·해안용 등 고부가가치 굴삭기도 발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

볼보건설기계의 기업문화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권한과 한계가 명확하고, 그 안에서 자율성이 보장된다. 닐슨은 “우리 회사에는 1500명의 경영자가 있다”며 “모두가 자기 분야와 공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닐슨 사장은 한국이 더이상 개발도상국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에, 제조업 임금 수준도 스웨덴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온 마당에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에서 6퍼센트 이상의 고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닐슨은 또 “한국의 대형 사업장이 70~80년대 북미를 연상케 한다”며 “정부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고, 회사 쪽이 투명성을 갖고 노동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제조업의 몰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닐슨은 ‘노동의 힘’을 믿는 사나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숲에서 나무로 무엇인가 만들기를 즐겼던 그는 한국에 부임할 때 미국에서 자신의 연장통을 챙겨왔다. 지난 6년 동안 개근했던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서도 최고급 목수라는 찬사를 들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학원에 다닌다는 겁니다. 노동을 모르고, 모험을 모르는 아이들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클 수 있을까요?”


“여성 배척하면 미래 없어… 한국기업 미국 선호 서운”

롤스로이스 한국지사 알란 플럼 사장
롤스로이스 한국지사 알란 플럼 사장
서울 방배동 롤스-로이스 한국지사 사무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차를 사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제품을 하나 사려면 수백억원이 필요하다.

자동차 회사로 알려진 롤스-로이스는 사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산업용 엔진 제조회사다. 주력 상품은 항공기와 선박,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엔진이다. 세계 600개 이상의 항공사와 160개국의 군대, 2천개 이상의 해양업체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성공한 글로벌 기업은 대부분 1~2개의 핵심 분야에 집중합니다. 롤스-로이스도 98년 차량 부문을 폴크스바겐과 베엠베에 매각한 뒤 꾸준히 사업 포트폴리오를 좁혀왔습니다.” 14일 사무실에서 만난 알란 플럼(60·사진) 한국 롤스-로이스 사장은 “70년대 부도를 내는 등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얻은 교훈”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102년 전통의 영국 ‘국민기업’ 롤스-로이스는 △민간항공 △군사항공 △해양선박 △에너지 네 분야에서 연간 매출 114억달러를 올리는 탄탄한 회사로 거듭났다. 항공과 조선 호황에 밀린 주문만 432(약 42조원)억달러다.

롤스-로이스에게 조선 강국이자 군비 지출 세계 10위권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연간 매출도 4억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플럼 사장은 한국에서 유럽 기업들이 받는 ‘차별대우’에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뿌리깊은 미국과의 우호관계가 경제 분야에도 이어져, 기업들이 가급적 미국쪽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동맹 때문에 호환성이 좋은 미국제가 유리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최근 군수 시장에서도 가격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1977년 한국에 부임한 그는 제프리 존스 미래의 동반자재단 이사장과 더불어 국내에 가장 오래 근무한 외국인 최고경영자다. “1976년 시장 조사차 한국에 와서 영국 본사에 ‘이 나라에 합작은행을 세우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보고했죠.” 이듬해 문을 연 새한종합금융에서 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한 금융기관을 세운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영국 신사’ 플럼은 여성 문제만 나오면 목청이 높아진다. 그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사노동과 육아를 떠맡기고, 직장에서 배척하는 것이 미래에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성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니 출산률 저하는 당연한 거죠. 고령화 추세를 못 막으면 그 어떤 경제 모델로도 한국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그는 외국인 최고경영자들의 가장 큰 불만 역시 노사관계나 규제가 아니라 남성들끼리의 술자리로 요약되는 ‘밤문화’라고 말했다. 자신은 미혼이라 괜찮지만, 가족이 있는 이들은 한국 부임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플럼이 느끼는 또 하나의 과제는 의사소통 기술의 향상이다. 이는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암기 위주다보니 똑똑한 사람들도 대화를 재미있고 풍부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보니 투자 유치도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요.”

글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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