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시장 합종연횡 활발
포스코·현대 무분별 경쟁보다
내수기반·기술력 고려 전략을
포스코·현대 무분별 경쟁보다
내수기반·기술력 고려 전략을
새틀짜는 철강산업 (하)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사업 진출로 시작된 국내 철강산업 재편논의는 세계 철강시장의 지각변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양강구도는 국내시장에 국한된 얘기이다. 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두 회사의 경쟁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성장의 기반은 내수시장에 두고 있다. 내수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각사의 글로벌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계 철강업계는 지금 덩치키우기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달 20일 인도의 철강재벌 타타는 세계 9위의 영국 철강기업 코러스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6월에는 세계 1·2위 철강회사인 네덜란드 미탈과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가 합병했다. 이로써 세계 조강생산의 10%(1억1000만톤)를 장악하는 거대공룡이 등장했다. 이처럼 세계 철강업계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세계 4위인 포스코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인도 오리사주에 연산 1200만톤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트남에 70만톤급의 냉연강판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제철소는 광산에서, 생산공장은 시장에서’가 포스코의 새로운 글로벌전략이다. 이제 막 일관제철사업에 발을 디딘 현대제철도 글로벌 강자를 꿈꾸고 있다. 우선 현대·기아차그룹이라는 내부 수요처에 초점을 맞춰 700만톤급의 일관제철소를 짓지만, 2015년까지 연산 2250만톤급으로 생산능력을 키워 세계 6위의 종합철강회사로 발돋움한다는 게 현대제철의 목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이런 목표가 달성되려면 상생의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포스코는 현대제철의 등장으로 내수기반이 흔들리고 현대제철은 세계 철강시장의 치열한 경쟁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칫 한국 철강산업 전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포스코는 전체 냉연강판 생산의 34.9%를 자동차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2008년까지는 자동차 등에 쓰이는 고급강판이 총 판매물량에서 80%가 되도록 한다는 게 포스코의 성장전략이다. 그러나 국내 최대 고급강판 수요자인 현대·기아차그룹이 2011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주된 공급처로 삼는다면 포스코의 성장전략은 차질이 생긴다.
현대제철의 기술력 확보 여부도 한국 철강산업 재편구도에 중요한 변수다. 업계에서는 자동차용 고급강판시장의 성공 요건으로, ‘설비 80%, 기술력 20%’라는 말이 통설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설비를 갖춰도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 경영연구소의 탁승문 철강연구센터장은 “현재 기술로 현대·기아차의 품질수준에 부합하는 강판을 생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일본 등지에서 들여오는 최신설비만으로 기술력이 담보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철강산업의 체질강화를 위한 포스코와 현대제철간 협력 가능성은 아직 희미해 보인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선임연구원은 “철강산업의 특성상 내수시장이 흔들리거나 기술개발이 제 때 이뤄지지 않는 다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포스코는 현대제철에 설비와 기존 판매망을 협조하고 현대·기아차그룹은 포스코의 기술력과 시장기반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가운데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업체들끼리 자발적인 협력은 쉽지 않다. 때문에 정부의 다리역할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스틸엔스틸 철강산업연구소 서정헌 소장은 “두 회사는 서로 경쟁할 분야와 손을 잡아야 할 부문을 나누고, 정부차원에서는 한국 철강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협조체계를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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