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나 ‘가벼운 관계’양산 싫어
서울대 철학과 교수 44% ‘불통’
서울대 철학과 교수 44% ‘불통’
공무원 최아무개(34)씨는 휴대전화가 없다. 출근을 빨리 하고 퇴근을 늦게 하는 편이라 업무에 불편한 점은 별로 없다. 가끔씩, 그가 화장실에 가거나 잠시 자리를 비우면 동료들이 눈총을 보내기는 한다. 새로 온 상사마다 휴대전화 구입을 ‘권유’하고 여자 친구도 한때 ‘압력’을 넣었지만, ‘최씨 고집’에는 곧 두 손 들었다. 최씨는 “휴대전화가 편리하긴 하지만, 너무 가벼운 관계들을 양산하는 것 같다”며 “네트워크 속에 빠져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4천만명 시대에 최씨는 매우 희귀한 사람이다. 10살 이상 인구 4300만명 중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얼추 300만명. 어린 학생과 군인, 재소자 등을 제외하면 ‘스스로 거부한 인구’는 훨씬 줄어든다.
여러 직업군을 둘러보면,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휴대전화를 안 쓰는 편이다. 가령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11명 중 2명, 충남대 철학과 교수 9명 중 2명,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3명 중 1명이 휴대전화가 없다. 전국의 대학에서 가장 ‘불통’인 곳은 서울대 철학과로, 교수 18명 가운데 무려 8명이 문명의 총아와 한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
휴대전화가 없는 안도현 우석대 교수(문예창작과)는 “인문학이 아무래도 사색과 사유의 학문이라 그런 듯하다”며 “어찌 보면 속도에 대한 나름의 저항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고 답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소설가 구효서씨도 “우리가 필요해서 인터넷과 휴대폰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알고 보면 타인의 필요에 우리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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