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10년 이후 새로운 위기 해법
외환위기 10년 ③ 또다른 위기 돌파구는?
성장부실 의견 일치, 처방은 제각각
“향후 10년은 ‘위기 이후의 새로운 위기’가 될 수 있다.”(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2007년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의 창이다.”(재벌 경제연구소 임원)
외환위기 이후 10년째가 되는 2007년을 맞아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진보와 보수 갈릴 것 없이 모두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또 지금 기회를 놓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걱정한다.
무엇보다 성장의 양과 질이 모두 부실하다. 수출은 4년 연속 두자리수 증가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투자와 소비는 여전히 부진하다. 올해의 실질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4% 중반으로 예상된다. 좌승희 경기개발원장은 “10년 안에 0% 성장도 배제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성장과 성장동력 약화가 성장의 양적 부실을 보여준다면,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비정규직 확대 등 양극화 심화는 성장의 질적 부실을 상징한다.
하지만 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다. 일부 재벌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일들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기업에게 수비 위주의 경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이 주도한 ‘조작된 패배주의’에 의해 무장해제된 기업들이 방어에 급급했던 시기다.” (재벌 경제연구소 임원) 또 선진국이 되려면 길은 하나 뿐이라고 말한다. “큰 수익을 얻으려면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재도전해야 한다. 기업들이 공격에 나설 수 있도록 무장해제를 풀어야 한다.”
위기의 뿌리를 보다 멀리 1987년 민주화투쟁에서 찾기도 한다. 좌승희 원장은 “1987년 이전과 이후는 이념과 경제정책 패러다임 면에서 전혀 다른 나라”라면서 “이전에는 열심히 해서 부와 성공을 이루는 게 자랑이었고 박수를 받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불편하고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다. 좌 원장은 “성공한 사람이 불편하고 손해보는 사회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 무장해제? 양극화? 본질 인식 큰 차
장기적 선순환구조 발상·공공성 부활 필요
반면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지난 10년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방치되고 희생된 사람들에게서 위기의 본질을 찾는다. 양극화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는 진단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국민적 지원을 통해 회생했지만 중소기업은 방치됐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가계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이 없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인식 그 자체보다 그 차이를 해소하고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사회적 프로세스와 메커니즘의 부재이다. 부동산·일자리·노후·교육·노사관계 등 현안들이 쌓여있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안보이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합의과정을 관리하는 공공의 역할, 특히 정부의 역할이 없거나 신뢰를 못받는 데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이는 우리사회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지적과 직결된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장은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자본, 곧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신뢰도가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소장은 “정책 집행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관리하는 사람들부터 민주화가 돼야 한다”면서 “국가기구의 공공성과 민주성 확립을 핵심 어젠더로 삼자”고 제안한다. 김기원 교수도 “시장과 민주주의의 균형발전이 절실하다”면서 “이를 위해 정부와 국가가 시장의 효율성과 합리성은 살리되 폭력성과 불완전성은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새해 신년사에서 “창조적 발상과 혁신”을 강조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고언이 많다. 이를 통해 갈등을 풀 수 있는 상생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임금 동결, 비정규직 확대,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기적으로 가계소비 위축→기업 실적 악화→고용 감소라는 악순환만 낳을 뿐이다. 기업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지만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일 희망포럼이 제시한 ‘4조근무제 시행→휴식시간 확대→평생학습체제 구축→지식근로자 육성→경쟁력 제고→일자리 창출’과 같은 혁신적 ‘뉴패러다임’마저 외면한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뉴패러다임은 단순 이론이 아니라 선진국들이 30여년 전부터 시행해 성공한 모델”이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은 경제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비전 및 전략 수립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로 급부상한 ‘켈트의 호랑이’ 아일랜드는 대표적 성공사례다. 우리는 고령화사회와 통일시대 대비라는 또 다른 큰 숙제까지 안고 있다. 우리가 10년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힘과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조선말 개화기와 해방전후 시기에 이어 세번째로 맞은 역사적 분수령에서 또 다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kwak@hani.co.kr
선택과 집중, 합의 그들을 살린 힘이었다
주요 선진 강소국들의 전략 주요 선진국들은 노·사·정 대타협으로 사회·경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토대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또 지속적인 혁신을 단행하고 고급 인력의 개발과 유치에 주력했다. 핵심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개방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인 점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유럽의 대표적 강소국인 아일랜드는 영·미형 신자유주의의 영향권에 있음에도 사회합의를 중시하는 북유럽형 조합주의 요소를 가미하고, 국가의 전략적인 개입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발전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소국 개방경제의 취약성을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등 세계화 추세를 활용하면서 유연성과 신속성을 제고했다.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국가의 전략 기획과 정책 조정을 통해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일랜드, 세계화 활용하며 조합전통 살려
핀란드·덴마크, 정보산업 지식기반산업 집중
싱가포르, 강력한 리더십으로 공감대 형성
핀란드는 1990년대 초반 경제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의회 산하에 미래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장기 안정 성장 전략이 모색됐다. 총리실은 부처별 미래전략을 단일화한 뒤 의회에 제출했다. 핀란드 정부는 1993년 정보화 사회를 신국가전략으로 설정하고 정보통신·생명·환경 분야 강소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또 산·학·연 연계와 지역밀착형 혁신체계를 통해 지방분권화를 강화하는 등 국가균형발전을 모색하고, 2000년에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결정구조를 분권화했다. 정재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연구위원은 “핀란드 혁신체제는 합의와 균형, 협력, 신뢰를 통한 효율과 통합에 근본적인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지식기반 산업 발전에 주력한 나라다. 덴마크는 정보통신 교육 확대를 통해 이공계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과 자금을 지원했고, 이를 통해 작지만 최고를 지향하는 기술 집약적 기업들을 많이 육성했다.
싱가포르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책 일관성으로 성공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장기 비전 제시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토지 소유 공영화와 종업원 연금제도 도입 등 선제적인 분배정책을 폈다. 우수한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초등학교부터 경쟁 체제를 도입했고, 다언어·다문화 교육을 강조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장기적 선순환구조 발상·공공성 부활 필요
전문가들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신뢰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등이 지난해 9월15일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빌딩 앞에서 집회를 갖고 노사정위원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다 심각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인식 그 자체보다 그 차이를 해소하고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사회적 프로세스와 메커니즘의 부재이다. 부동산·일자리·노후·교육·노사관계 등 현안들이 쌓여있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안보이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합의과정을 관리하는 공공의 역할, 특히 정부의 역할이 없거나 신뢰를 못받는 데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이는 우리사회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지적과 직결된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장은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자본, 곧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신뢰도가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소장은 “정책 집행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관리하는 사람들부터 민주화가 돼야 한다”면서 “국가기구의 공공성과 민주성 확립을 핵심 어젠더로 삼자”고 제안한다. 김기원 교수도 “시장과 민주주의의 균형발전이 절실하다”면서 “이를 위해 정부와 국가가 시장의 효율성과 합리성은 살리되 폭력성과 불완전성은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새해 신년사에서 “창조적 발상과 혁신”을 강조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고언이 많다. 이를 통해 갈등을 풀 수 있는 상생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임금 동결, 비정규직 확대,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기적으로 가계소비 위축→기업 실적 악화→고용 감소라는 악순환만 낳을 뿐이다. 기업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지만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일 희망포럼이 제시한 ‘4조근무제 시행→휴식시간 확대→평생학습체제 구축→지식근로자 육성→경쟁력 제고→일자리 창출’과 같은 혁신적 ‘뉴패러다임’마저 외면한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뉴패러다임은 단순 이론이 아니라 선진국들이 30여년 전부터 시행해 성공한 모델”이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은 경제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비전 및 전략 수립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로 급부상한 ‘켈트의 호랑이’ 아일랜드는 대표적 성공사례다. 우리는 고령화사회와 통일시대 대비라는 또 다른 큰 숙제까지 안고 있다. 우리가 10년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힘과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조선말 개화기와 해방전후 시기에 이어 세번째로 맞은 역사적 분수령에서 또 다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kwak@hani.co.kr
선택과 집중, 합의 그들을 살린 힘이었다
주요 선진 강소국들의 전략 주요 선진국들은 노·사·정 대타협으로 사회·경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토대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또 지속적인 혁신을 단행하고 고급 인력의 개발과 유치에 주력했다. 핵심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개방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인 점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유럽의 대표적 강소국인 아일랜드는 영·미형 신자유주의의 영향권에 있음에도 사회합의를 중시하는 북유럽형 조합주의 요소를 가미하고, 국가의 전략적인 개입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발전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소국 개방경제의 취약성을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등 세계화 추세를 활용하면서 유연성과 신속성을 제고했다.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국가의 전략 기획과 정책 조정을 통해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일랜드, 세계화 활용하며 조합전통 살려
핀란드·덴마크, 정보산업 지식기반산업 집중
싱가포르, 강력한 리더십으로 공감대 형성
주요 선진국의 성공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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