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대선 기자
대구섬유는 한때 전국에 명성을 떨쳤다.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대구 섬유산업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최대 호황을 누리며 이 시기 우리나라 수출의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 대구섬유는 1987년쯤 절정에 이르러 이 지역 제조업체에서 차지하는 섬유의 비중이 절반에 달했으며 섬유로 먹고 사는 인구가 30만∼40만명을 웃돌기도 했다. 대구 하면 가장 먼저 섬유를 떠올리고 초중고 교과서에는 대구를 섬유도시로 소개해놨다.
그러나 대구섬유는 1990년 초반부터 내리막길에 들어서 값싼 중국산에 밀려 수출길이 막히고, 결국 내수시장도 중국에 자리를 내주면서 사양길에 접어든다.
대구시는 1998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구를 세계적인 섬유도시인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키우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6800억원이 넘는 큰 돈을 들여 ‘밀라노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죽어가는 대구섬유를 살려내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들어 제법 규모가 큰 몇몇 업체들은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옮겨가며 활로를 찾아보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업체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공장 문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학계·연구기관·대구시 등에서는 대구섬유가 종전처럼 옷감생산에만 매달려서는 도저히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의료기기·타이어소재·비행기부품 등 부가가치 높은 산업용 의류나 특수 기능성의류 쪽을 뚫어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업원 10명 이하의 영세한 업체들이 주류를 이루는 섬유업체 3천여곳을 30∼50명 규모의 공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공감대를 이룬다.
그러나 이런 일을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 섬유단체들이 아직도 20∼30년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초등학교에서도 학급 반장을 선거로 뽑지만 20여곳이 넘는 대구 섬유단체들한테는 선거는 먼나라 얘기로 들린다. 섬유단체 이사 몇몇이 모여 합의추대 형식을 빌어 대표를 선임한다. 한 사람이 10년 이상 ‘장기집권’ 하거나 한명이 단체 3곳의 대표를 겸임하기도 한다. 섬유단체 대표격인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는 대표가 이미 70살을 넘겼으며, 염색업쪽은 60대 후반의 대표가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섬유는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이나 유럽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20여년 침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국제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섬유단체들이 젊어져야 하고, 활력이 넘쳐흘러야 한다.
대구섬유가 옛날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섬유단체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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