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장관급 협상 사흘째인 28일 주요 쟁점에서 몇 가지 양보안을 들고 나옴에 따라, 한국 협상단이 그에 따른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한국 협상단은 일단 미국이 그동안 ‘10년 이상’을 완강히 고수해 왔던 자동차 수입관세 철폐 시한(승용차 3년, 픽업트럭 10년)을 앞당긴 것에 크게 반색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 정도 양보안은 미국으로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쪽에는 뭔가를 양보한 듯 생색을 내면서도, 실제론 지엠·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에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 절묘한 관세 철폐 시한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다른 나라한테는 승용차 관세 ‘즉시 철폐’를 해 왔다. 그러나 이는 큰 의미가 없는 조처였다. 자동차 수출국과 체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 정도 양보안으로는 한국산 자동차 수입이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 장관급 협상의 미국 쪽 대표인 캐런 바티아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지난 20일(미국 시각)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무역소위원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는 이날 한국 자동차의 향후 대미 수출 효과에 대한 분석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미국에서 팔리는 한국 브랜드 자동차의 22%가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지는데, 미국 정부의 분석 결과 3년 뒤에는 67%로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미 협정을 통해 관세가 철폐되지 않아도 3년 뒤면 미국서 팔리는 한국 브랜드 차의 3분의 2가 원산지 기준에 따라 합법적으로 무관세 혜택을 입는다는 뜻이다. 즉시 철폐가 아닌 이상 3년 내 철폐는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이 없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픽업트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은 “미국식 픽업트럭을 제조해 수출하려 해도 한국에서는 그동안 이를 만들지 않아 생산라인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다 노하우가 없어 미국 제조업체를 따라가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에는 소비가 안 될 픽업트럭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는 미국 현지에서 만들면 지금이라도 에프티에이와 상관없이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 업체 누구도 진출하지 않았다”며 “픽업트럭 수출은 시장성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한국은 자동차 관세 철폐를 받아내고자 너무 일찌감치 중요한 협상 무기들을 버리고 말았다는 평가다. 배기량 기준인 자동차 세제를 가격 기준인 미국식에 맞추기로 미국에 약속한 것이나, 각종 환경·안전 기준을 미국 자동차에 유리하게 개편해 주기로 한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더욱이 에프티에이 체결 뒤에도 미국 쪽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위원회마저 상설화하기로 했다.
샌더 레빈 미국 하원 무역소위 위원장은 지난 20일 청문회에서 “한국이 처음부터 미국의 자동차 관세 철폐를 협상의 최우선 순위로 둔 만큼 미국 협상단은 이 카드를 끝까지 버리지 말고 버텨 지렛대로 삼으라”고 주문한 바 있다.
송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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