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가 지난 31일 오전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애초 예정했던 협상시한을 48시간 연장해 추가 협상을 갖기로 했다고 밝힌 뒤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 의회 휴일근무 따라 협상시한 ‘고무줄’
연장없다더니 미 요구에 하루만에 번복
연장없다더니 미 요구에 하루만에 번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한 ‘48시간 연장’ 과정은 미국 통상법의 포로가 된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미국 의회의 ‘휴일근무’ 여부에 따라 협상 시한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고, 그에 따라 “미국 쪽 협상 시한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강조하던 한국 정부는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외교통상부는 애초 미국 통상법의 절차 규정 가운데 하나인 무역촉진권한(TPA) 규정에 따라 한-미 에프티에이가 처리되려면 30일 오후 6시(한국시각 31일 오전 7시)까지 미국 의회에 체결 의향서가 전달돼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한-미 에프티에이 본서명 시점 90일 전인 4월1일(미국시각)까지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체결의사를 통보해야 하지만, 1일과 31일이 휴일인 토·일요일이라 의회 통보의 마감시간이 이틀 앞당겨지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미국 의회 공무원의 근무시간에 맞춰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의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협상 시한 8시간 전인 30일 오후 3시께(이하 한국시각) 미국이 협상시한을 4월2일까지 연장할 것을 제안했고 예정됐던 대외경제장관회의도 전격 취소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곧바로 “협상 시한 연장은 없고 대외경제장관회의도 예정대로 한다”고 미국 쪽 제안을 단호히 맞받아쳤다. 잠시 뒤인 오후 4시께 미국 협상단의 스티브 노튼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도 “미국은 협상시한 연장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보도내용을 부인한 뒤, “오늘 밤 12시가 데드라인”이라고 밝혔다. 노튼 대변인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공식해명 자료까지 배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되든 안되든 오늘 밤에 결판낸다는 게 내부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협상 시한 연장 논란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실상 협상 마감 시점으로 생각했던 30일 자정까지 농업과 자동차, 섬유, 금융 등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자, 한-미 양국은 ‘선 타결, 후 최종합의’라는 변칙적 방식으로 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 의회 통보 시한인 31일 오전 7시 이전에 협상 타결을 먼저 발표하고, 추후 세부 쟁점 사안에 대한 조문화 작업은 이틀 정도 더 하기로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미국 의회는 ‘선 타결, 후 최종합의’ 방식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시한 연장이라는 마지막 ‘변칙카드’를 꺼내지 않는다면 협상은 그대로 결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와 무역대표부는 의회가 일요일 오후 5시(미국시각)까지 체결 의향을 접수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우리 쪽에 협상시한 48시간 연장을 통보했다. 김종훈 우리 쪽 수석대표는 31일 오전 7시30분(한국시각)에 브리핑을 통해 협상시한 연장을 공식 발표했다.
결국 우리 협상단은 미국 의회가 정한 무역촉진권한 시한에 맞춰 협상 일정을 맞춰오다가, 미국이 다시 편의적으로 바꿔 제시한 협상 시한 연장을 받아들이는 등 미국 의회의 일정과 협상 전략에 휘둘린 셈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중인 천정배 의원은 “48시간 연장은 미국이 한국 쪽 협상단을 인질로 48시간을 추가로 감금한 채 더 뜯어내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김근태 의원도 “협상 연장은 없다고 얘기한 청와대가 하루도 되지 않아 말을 번복하는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굴욕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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