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조작 농산물 검사 생략’ 파장
정부가 미국의 섬유시장 개방을 위해 미국에 안전성 논란이 있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에 대한 수입승인 절차와 안전검사를 생략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한겨레> 4월2일치 1면 참조)으로 전해지자 환경단체들은 “국민의 생명안전을 팔아넘긴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지금까지 추진돼 온 정부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 통제 강화 움직임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어서 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강화하는 추세에 맞춰 정부는 지난달 29일 콩·옥수수 등 네 품목에 한정돼 있던 유전자 조작 농산물 표시 대상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평가를 거친 모든 품목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럽연합·일본과 마찬가지로 사료용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해 동물 안전성 평가를 시행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국제사회가 유전자 조작 생물체의 위협을 통제하기 위해 마련한 생물다양성 협약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를 올 상반기 안에 비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 이를 위해 관련 법률인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련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까지 끝내 놓았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해 사실상 특혜를 주게 되면,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 비준과 관련법 시행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지애 환경운동연합 생명안전본부 국장은 “세계 최대 유전자 조작 작물 수출국인 미국에 예외를 인정하면,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를 비준하더라도 시행은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결국 국민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는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어야 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또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와 별도로 국내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 표시제’ 등 기존 유전자 조작 생물체 관리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환경단체에서 우려하는 부분이다. 임성희 녹색연합 정책실장은 “정부의 양보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을 고려하고 있는 국내 제도를 무력화시켜 환경주권을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 132개국이 가입한 생물다양성 협약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에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이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국 업계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농업생명공학 국제서비스(ISAAA) 통계를 보면 미국은 2005년 전세계 유전자 조작 작물 재배면적 9000만㏊의 55%에 해당하는 4980만㏊의 면적에 벼에서부터 감자·호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세계 최대 유전자 조작 작물 수출국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작물의 안전성 논란이 심화되면서 국외시장을 파고드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대부분 유전자 조작 작물인 미국의 대한국 콩 수출량만 해도 2003년 118만6645t에서 2004년 101만2650t, 2005년 79만4322t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양보는 미국에 유전자 조작 작물 국외시장 개척에 앞서 국외 소비자의 반응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는 셈이다.
미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면제할 경우, 당장 2002년 7월 이후 수입되지 않고 있는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다시 들어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는 2000년 사료용으로 승인됐으나 유통 과정에서 식용으로 불법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커진데다, 검사도 강화돼 수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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