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자구노력+공적자금’ 알짜기업 탈바꿈
일부 기업주 ‘제목 챙기기’…헐값매각 논란도
일부 기업주 ‘제목 챙기기’…헐값매각 논란도
아내는 꼬깃꼬깃해진 만원짜리 지폐 6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남편은 가슴이 울컥했지만 차마 그 돈을 받지 못했다. 김해준(41) 쌍용건설 차장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의 아내 모습이 떠오른다.
1998년 11월12일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당시 대리였던 김 차장이 받은 월급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110만원. 우유를 끊고, 적금과 보험을 해약했다. 두 딸의 유치원도 포기했다. 그런 힘든 생활 속에서 김 차장의 아내는 한달에 2만~3만원씩 모아둔 돈을 그에게 용돈으로 쓰라며 준 것이었다. 그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한편으로 반드시 워크아웃을 벗어나 번듯한 직장으로 만들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 것은, 2천억원에 가까운 쌍용자동차 채무를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으로 민간 수주가 거의 불가능해지자, 직원들이 발로 뛰며 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건설회사가 “도심 주상복합 아파트는 사업이 안 된다”며 포기한 곳을 개발해 분양에 성공했다. 2001년 ‘경희궁의 아침’이 그것이다. 경영진이 직접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교민들을 상대로 200가구를 분양했다.
2003년에는 직원들이 마지막 보루로 여기던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320억원으로 당시 2천원대였던 주식을 5천원에 인수했다.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으로 코스닥 퇴출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2004년 10월 쌍용건설은 예정보다 이른 5년8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매출 1조3500억원, 순이익 527억원을 올리는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채권 금융회사를 통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워크아웃이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 워크아웃을 거친 기업들이 알짜기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견뎌내고, 경영진과 채권단은 자구 노력에 힘을 합치고, 정부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쏟아 부은 결과다.
1998년 7월 고합(현 케이피케미칼)이 처음으로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된 이래 ㈜대우,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워크아웃을 거쳤다. 지난 19일에는 에스케이네트웍스가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금융감독원이 2001년 9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워크아웃 기업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71곳이 워크아웃을 받았고, 이 가운데 47곳이 경영정상화 또는 제3자 매각으로 구조조정을 끝냈다. 구조조정 성공률이 66.2%다. 이 기간 채권 금융회사의 금융 지원액은 하이닉스가 9조2천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현대건설 6조9천억원, 에스케이네트웍스 6조7천억원 등의 차례다.
워크아웃은 성과도 낳았지만, 일부 기업 경영자는 자기 몫을 챙기는 등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도 했다. 산업은행의 대우자동차 매각 때는 헐값 논란도 일었다. 삼보컴퓨터 등 11곳은 워크아웃을 졸업하지 못한 채 법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98년 당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워크아웃을 진두지휘한 이성규 하나금융그룹 부사장은 “워크아웃을 도입한 덕분에 수십조원의 부실을 안은 대기업들이 짧은 시간 안에 회생할 수 있었고 국민경제도 부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부실에 책임 있는 대주주들에게 페널티를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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