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은행원에 수작 걸다 들통난 ‘보이스 피싱’ 수법
전화 사기범이 은행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기를 치다 들통이 났다.
최승천 기업은행 이비즈니스부 팀장은 지난 18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족 말투의 남자는 “개인 정보가 도용돼 검찰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서울 검찰청 금융조사과 이종필’이라고 밝힌 사람이 ‘거래 은행’과 ‘통장 잔고’를 물어본 뒤 “은행에서 안전장치를 해야 된다”며 급히 현금 입출금기 앞으로 가라고 말했다.
최 팀장이 그렇게 하자, 전화 속 목소리는 현금 입출금기 앞에서 자신이 말하는 순서대로 현금 입출금기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했다. “일단 카드를 넣고 안전카드 버튼을 누르세요”. 최씨가 “그런 버튼이 없다”고 하자, 전화속 목소리는 “대신 계좌송금 누르시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안전카드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이) 된다”고 말했다. 계좌송금 번호와 비밀번호를 안전카드 번호라고 속인 것이다.
입출금기 화면에 입금 계좌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오자, 전화 속 목소리는 “‘03’을 누르시고, 안전 계좌카드 번호 ‘3780 7781 2010 14’를 누르라”고 말했다. 03은 은행코드이고 ‘3780 7781 2010 14’는 사기꾼의 ‘대포 통장’이었다.
최씨가 따라 한 뒤 “입출금기 화면에 입금 금액을 누르라고 나온다”고 말하자, 전화 속 목소리는 “일단 무시하고 인증번호 9685878을 누르고 원(₩)자 버튼을 누르라”고 요구했다. ‘9685878’은 인증번호가 아니라 968만5878원으로, 1천만원 이상 계좌 이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한 것이다.
최 팀장은 “사기꾼들이 장황한 얘기를 많이 해 계좌이체 번호가 아닌 것 처럼 속인다”며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거래 은행과 통장 잔고를 가르쳐 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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