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양극화와 은행들의 깐깐한 신용관리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7~10등급의 저신용 계층이 양산되고 있다. 사진은 ‘신용 파탄’을 맞은 서민들이 서울 중구 명동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저소득층 ‘낮은 신용’ 악순환 살펴보니
저축은행 상당수 강남 3구에 몰려
은행선 쫓겨나고 카드·사채 ‘피멍’
저소득층 대출 의무화등 정책시급 이달 초 사금융 피해 신고를 받는 서울시 생활경제과에 전화가 걸려왔다. 50대 여성이었다. 그는 “남편의 병원비 2천만원이 필요해 생활정보지에 나온 ‘급전 대출’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240만원을 먼저 보내주면 2천만원을 빌려준다’고 해 동네 사람들과 친척한테 돈을 빌려 보냈는데 연락이 두절됐다”고 호소했다. 상담 직원이 안타까운 마음에 “왜 돈을 보냈느냐”고 했더니, 그는 “돈은 급한데 은행 대출은 안 되고 그나마 여기서는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 설마 하는 마음에 돈을 보냈다”며 울먹였다. 국민 다섯 가운데 한 명꼴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은행들이 대출 부실화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신용등급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탓이 크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많이 늘렸다고 하나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이어서 집 없는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또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들 서민금융회사는 저소득층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준 뒤, 고율의 이자로 부유층 고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상호저축은행의 지점들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강북에 지점이 한 곳도 없는 상호저축은행이 여럿 된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은행 대출 거부→신용카드 대출→대부업체→사채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원금보다 이자가 더 불어나게 된다. 은행 문턱은 높고 대부업은 관리·감독이 안 되는 틈을 타 서민들을 상대로 한 살인적 고금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신고 사례를 보면, 김아무개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대부업체에서 25만원을 대출받아 2주 뒤 65만원을 갚아야 했다. 이자율이 연 4160%나 된다. 그는 또다른 대부업체에서 105만원을 대출받아 1주일에 20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이자율이 연 99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이들이 제도권 금융회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은행들이 서민이라고 해서 대출을 기피하는 ‘리스크 회피’가 아니라 상환 의지가 있는 사람을 선별해 지원하는 ‘리스크 관리’로 영업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을 참고한 ‘서민금융 및 지역금융 활성화 법률안’을 16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서민들이 제도 금융권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의 일정 비율을 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대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회사들이 서민금융 기능을 확대할 필요는 있지만 상업성을 원칙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무조건 서민금융을 지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지원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하위 신용등급에서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려면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창업 자금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는 휴면예금을 통해 사회연대은행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은행선 쫓겨나고 카드·사채 ‘피멍’
저소득층 대출 의무화등 정책시급 이달 초 사금융 피해 신고를 받는 서울시 생활경제과에 전화가 걸려왔다. 50대 여성이었다. 그는 “남편의 병원비 2천만원이 필요해 생활정보지에 나온 ‘급전 대출’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240만원을 먼저 보내주면 2천만원을 빌려준다’고 해 동네 사람들과 친척한테 돈을 빌려 보냈는데 연락이 두절됐다”고 호소했다. 상담 직원이 안타까운 마음에 “왜 돈을 보냈느냐”고 했더니, 그는 “돈은 급한데 은행 대출은 안 되고 그나마 여기서는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 설마 하는 마음에 돈을 보냈다”며 울먹였다. 국민 다섯 가운데 한 명꼴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은행들이 대출 부실화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신용등급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탓이 크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많이 늘렸다고 하나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이어서 집 없는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또 상호저축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들 서민금융회사는 저소득층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준 뒤, 고율의 이자로 부유층 고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상호저축은행의 지점들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강북에 지점이 한 곳도 없는 상호저축은행이 여럿 된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은행 대출 거부→신용카드 대출→대부업체→사채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원금보다 이자가 더 불어나게 된다. 은행 문턱은 높고 대부업은 관리·감독이 안 되는 틈을 타 서민들을 상대로 한 살인적 고금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신고 사례를 보면, 김아무개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대부업체에서 25만원을 대출받아 2주 뒤 65만원을 갚아야 했다. 이자율이 연 4160%나 된다. 그는 또다른 대부업체에서 105만원을 대출받아 1주일에 20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이자율이 연 99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이들이 제도권 금융회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은행들이 서민이라고 해서 대출을 기피하는 ‘리스크 회피’가 아니라 상환 의지가 있는 사람을 선별해 지원하는 ‘리스크 관리’로 영업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을 참고한 ‘서민금융 및 지역금융 활성화 법률안’을 16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서민들이 제도 금융권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의 일정 비율을 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대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회사들이 서민금융 기능을 확대할 필요는 있지만 상업성을 원칙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무조건 서민금융을 지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지원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하위 신용등급에서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려면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창업 자금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는 휴면예금을 통해 사회연대은행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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