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위생조건 개정 요청…“한국 저자세 탓” 지적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골뼈(척추)가 포함된 쇠고기를 수출해 한-미 수입위생 조건을 위반한 미국 정부가, 자체 위생검역 절차의 개선에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위반 판정 근거인 수입위생 조건을 빨리 개정하자고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반복된 수입위생 조건 위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미국이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10일 농림부가 국회에 보고한 ‘주요 농정 현안 보고’를 보면, 등골뼈 발견으로 우리 정부가 검역중단 조처를 내린 다음날인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수입위생 조건 위반의) 실질적인 해결 방안으로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을 국제수역사무국(OIE) 지침에 맞춰 개정하자”고 협의를 요청해 왔다. 국제수역사무국 지침은 ‘광우병 통제국’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연령·부위에 관계없이 교역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현행 한-미 수입위생 조건은 ‘30개월 미만, 살코기’의 수입만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등골뼈를 포함한 쇠고기까지 수입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위반한 규정을 서둘러 고치자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수입 위험평가 절차상 5단계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위생 조건 개정 협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미국의 수입위생 조건 개정 요청에 따라,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수입국 권리로 보장한 8단계의 수입위험평가 중 4단계 현지조사를 마친 뒤 5단계인 가축방역협의회는 연기한 상태다. 그로부터 5일 뒤 미국산 수입쇠고기에서 등골뼈가 발견되자 우리 정부는 검역을 중단했다.
미국의 이번 요구는 자신들이 반복적으로 규정을 위반해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되레 규정을 바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어서, ‘적반하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마이크 조핸스 미국 농무부 장관은 등골뼈가 발견된 직후 “이번에 수출된 쇠고기는 30개월 미만 소의 것이며, 국제수역사무국 규정에 따르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해, 수입위생 조건 위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런 무리한 요구는 우리 정부가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수입중단 조처를 내리기는커녕 미국 쪽에 규정에도 없는 해명 기회를 주는 등 그동안 원칙에 따라 대응하지 못하고 농림부 관료가 ‘30개월 미만 등골뼈는 안전하다’며 미국의 논리를 대변하는 등 미국의 ‘적반하장’ 요구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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