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는 계열사 임원…“경영권 안정수단 악용” 지적
재벌그룹들이 거느린 공익법인(비영리법인)의 이사장 열명 가운데 여섯명 정도는 총수 또는 일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현직 계열사 임원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80% 이상의 이사장이 총수의 입김이 강하게 미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돼, 재벌 공익법인들이 애초 설립취지인 공익사업보다 총수일가 경영권 안정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30일 이런 내용의 ‘재벌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보유 현황 및 문제점’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번 조사는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59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존재하면서 공익법인 현황을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25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이사 현황을 공개한 33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19곳(57.6%)이 총수 또는 총수 일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재단(금호아시아나), 율촌재단(농심), 인하학원(한진) 등은 총수가 직접 이사장을, 서남재단(동양), 연강재단(두산) 등은 총수의 형제 등 총수 일가가 이사장을 맡은 사례다. 전현직 계열사 임원은 모두 9명(27.3%)으로 총수 일가와 합하면 33곳 중 28곳(84.8%)이 총수 일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사장이었다. 이사 전체 261명의 구성을 봐도 △총수 일가 41명(15.7%) △전현직 계열사 임원 54명(20.7%) △계열사 사외이사·법률고문 등 기타 이해관계자 23명(8.8%) 등 모두 118명(45.2%)이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1개 이상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의 수는 모두 36개이며, 특히 삼성그룹에선 4개 공익법인이 9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공익법인 출자 계열사가 가장 많았다. 이어 동부문화재단(동부)이나 롯데장학재단(롯데)도 각각 7개씩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법인의 계열사 지분율은 현행 상속·증여세법에서 5%까지만 세금을 면제해주는 조항 탓인지 대부분 5%를 밑돌았다. 하지만 21개사에서는 공익법인이 5% 한도를 꽉 채웠으며, 12개사에서는 5%를 초과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최한수 연구팀장은 “세제상 혜택이 없음에도 초과한 경우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우호지분의 성격을 갖는다”며 “이런 가운데 정부는 세금감면 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어 세금부담 없이 공익법인을 우호주주로 이용하려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세재개편과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통해 동일기업 주식 출연·취득 제한을 현행 5%에서 20%로, 계열기업 주식보유 한도도 공익법인 총재산의 30%에서 50%로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세제개편이 공익법인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일부 기여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런 인적·지분 구성에 비추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권 강화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제출을 유보하고 신중한 검토와 여론수렴과정을 거칠 것”을 촉구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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