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자통법 앞두고 한국 시장 영업기반 확충 필요
론스타, 투자자 환매 요구에 주식 담보 대출도 시도
론스타, 투자자 환매 요구에 주식 담보 대출도 시도
왜 외환은행 매각 합의 서둘렀나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맺은 외환은행 매각 계약 조건을 보면, 두 회사가 급히 서두른 정황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론스타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성된 조건들이 적지 않다. 홍콩상하이은행은 론스타에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외환은행 주가의 20%를 넘는 금액까지 챙겨줬다. 세계 3위의 거대 은행이 이처럼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외환은행 인수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 HSBC가 서두르는 까닭은?=금융권에서는 홍콩상하이은행이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에 앞서 국내에 들어와 영업 기반을 확충하려고 외환은행 인수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현재 지점을 추가로 내주지 않는 상황에선 외환은행 인수 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론스타에 매달렸다는 얘기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 자통법이 시행된 뒤 은행·증권·카드·자산운용 등을 묶어 ‘파이낸셜 슈퍼마켓’(금융상품 종합백화점)으로 국내 시장을 확대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인수에 눈독을 들이는 은행들이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 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 점도 홍콩상하이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론스타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면 외환은행의 ‘몸값’이 더 오를 것 같아 에이치에스비시가 인수를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인수 가격으로 주당 1만8045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외환은행 주가(8월31일 종가 1만4850원)에 견줘 21.5% 높은 가격이다. 또 지난해 국민은행이 론스타에 제시했던 가격(주당 1만5200원)보다 주당 2845원(18.7%) 비싼 셈이다.
홍콩상하이은행의 경영진 재편과 관련짓는 해석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인수·합병은 최고경영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근 에이치에스비시 경영진이 공격적인 성향의 인사들로 바뀌면서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왜 조급해 하나?=계약 조건을 살펴보면, 론스타 역시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계약서에는 “내년 1월31일까지 에이치에스비시가 주식 취득 승인을 위한 정식 신청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하지 못하면 론스타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앞으로 5개월 안에 홍콩상하이은행이 금감위를 설득하지 못하면 매각 파트너를 갈아 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계약 조건에는 “내년 1월31일 경과 후 인수 완료 때는 에이치에스비시는 1억3300만달러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돼 있다. 매각을 빨리 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올 들어 빨리 투자금을 회수해 한국을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블록 세일’ 방식으로 지분 13.6%를 팔아치웠고, 최근에는 외환은행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려 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익명을 요청한 외환은행 관계자는 “론스타가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 요청을 받자 지난달께 외환은행 주식을 담보로 외국에서 돈을 빌리려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들은 론스타가 한국을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주연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금융감독당국이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 등을 철저히 조사하면 할수록 론스타의 가격 협상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론스타가 시간에 쫓긴 나머지 매각 차익의 일부를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다.
■금감원 검사의 배경은?=금융감독원 은행검사2국 6팀과 7팀은 지난 3일부터 홍콩상하이은행 국내 지점을 상대로 △회계 처리 △자산 건전성 △준법 감시 여부 등을 검사하고 있다. 금감원은 2~3년마다 한차례씩 하는 정기 감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이 부정적 의견을 거듭 밝혔는데도 홍콩상하이은행이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터여서, 감독당국이 외환은행 인수를 불허하고자 사전정지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이계성 검사2국 6팀장은 “금감위의 권한인 인허가 기준에 대한 검사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 검사에서 심각한 지적 사항이 나올 경우 국내 지점 인허가 취소까지 가능하다. 이번 검사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되고, 다음달 중순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그동안 외환은행 매각 협상 때 제시된 주당 가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