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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 ‘물렁살’ 행보, 미국은 ‘통뼈’ 압박

등록 2007-09-07 19:25수정 2007-09-07 19:41

[뉴스분석] FTA비준안 국회제출 이후

미, 쇠고기 위생조건 어기고 상정 시기도 불투명한데
한, 뼈수입 허용요구 따르고 합의한 제도 도입 서둘러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준안 상정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미국 쪽과 달리 우리 정부는 성급한 모습이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부터, 협상, 재협상,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까지 ‘졸속’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비춰 볼 때, 올해 안에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7일 오후 담화문을 내어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검토해 동의해줘야 할 시점이 됐다”며 국회의 조속한 비준동의를 요청했다. 한 총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나라가 선진 통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이를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조속히 발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냈다. 비준동의안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투표 참여 의원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지만, 정해진 처리 시한은 없다.

우리 정부는 진작부터 서두르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우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 개방 작업에서 그렇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인 등골뼈가 검출되는 등 미국 쪽이 현행 수입위생조건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음에도, 뼈있는 쇠고기까지 허용하는 내용으로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달라는 미국 쪽 요구를 따르고 있다. 쇠고기 수입 개방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4대 선결조건 중 하나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합의한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려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초 입법예고한 동의명령제가 대표적이다. 동의명령제는 기업이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과 피해 보상을 약속하면 사건이 종결되는 제도다. 6일 열린 동의명령제 도입 공청회에서는 현행 우리 법 체계와 부합되기 어렵다는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법무부마저 “동의명령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미국산 대형차에 유리하도록 자동차세제를 개편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비롯해 저작권법, 약사법, 각종 금융관련 법안 등 국민 생활과 직결권된 법안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조항들에 맞춰지기 위해 줄줄이 국회에 올라갔거나 곧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는 6일 현재 무려 3613개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을 정도로 숙제가 밀려 있는 국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연내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서두르는 것은 미국 쪽의 압박 때문으로 파악된다. 미국 국무부 담당자는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에게 “한국이 한-미 에프티에이를 먼저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올해 한국의 정기국회에 통과시켜야 반대가 가장 심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업계를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협정통과를 위한 법 개정 작업도 제대로 진척되고 있다고 알려오고 있다. 그러나 쇠고기 개방 폭도 봐야 하고, 쇠고기 문제가 제대로 풀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준동의안의 성급한 처리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한-미 에프티에이는 단순한 통상조약이 아니라 우리 법률체계의 골격을 바꾸는 문제로 헌법개정과 맞먹는 큰 사건”이라며 “우리는 조약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해주는 데다 ‘신법의 구법 우선 원칙’에 따라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에프티에이 조항과 충돌하는 기존 법률들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파악한 개정 대상 법률만 모두 27가지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미국 쪽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입법안 상정 시기는 불투명하다. 부시 행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앞서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의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 지도부는 자동차 분야의 재협상과 함께 한국 쇠고기 시장의 전면개방을 요구하며, 현재 상태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한국과의 협정만이 내년으로 밀릴 경우 의회 통과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며 “부시 행정부가 쇠고기 수입문제 해결 이후 지지세 확산을 위한 정지작업과 함께 엄밀한 표 분석을 통해 이행법안의 적절한 상정시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미국 쪽 상황과 관련해 한 총리는 “미국 의회가 조속히 처리하도록 촉구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처는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한-미 에프티에이로 인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미-페루 에프티에이의 사례를 보면, 페루 의회에서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줬는데도 결국 올해 미 의회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했다. 우리 의회에서 먼저 비준동의안을 해주고 기다리면 구걸하는 모습이 되고, 또 미 의회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하면 이는 정부의 수모뿐만 아니라 의회 망신, 국가 망신이 된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미국은 이행법률안을 제출하지 않은 채 우리 쪽만 비준안이 통과된다면 이를 근거로 각종 외교적 압력을 넣을 것이고 반쪽짜리 한-미 에프티에이 때문에 행정주권은 물론 입법권까지 제약을 받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연내에 처리될 전망은 일단 불투명한 상태다. 무엇보다 이번 정기국회 일정이 연말 대선과 겹치는 탓이다. 원내 제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연내 처리에 부정적이고, 한나라당은 표면상 연내 처리 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굳이 서두를 게 없다는 기류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역시 연내처리엔 소극적이다. 민주노동당과 각당 농촌 지역 의원 등 80여명은 비준동의안 처리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비준동의안 처리가 연말 대선을 넘기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2월25일 이전에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반대 의원들의 필사적으로 저지할 경우 비준동의안은 내년 5월 이후 18대 국회로 연기될 수도 있다.

김진철 임석규 이재명 기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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