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금융자산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금융자산 격차가 소득 격차를 키우고 소득 격차는 또다시 금융자산 격차를 더 확대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개인 자산에서 금융의 비중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계층 간 금융자산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9일 통계청의 ‘가계 수지 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 도시 근로자가구 중 소득 수준 상위 20% 계층과 하위 20% 계층 간의 소득 격차인 ‘5분위 배율’은 5.04배다.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5.04배 많이 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이자 소득과 배당 소득 등 주로 금융자산 보유에 따라 얻는 재산 소득만을 따로 계산하면, 그 격차는 8.12배로 벌어진다.
이처럼 전체 소득 격차에 견줘 재산 소득 격차가 더 심한 것은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06년 가계 자산 조사 결과’ 원자료를 토대로 소득 계층 5분위별 저축액을 계산해보면, 지난해 5월 말 현재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격차가 7.24배에 이른다. 여기서 저축액이란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전·월세 보증금만을 빼고 예·적금 및 주식·채권 투자액을 모두 합친 것을 말한다. 조사 대상이 약간 다르지만, 통계청의 1996년과 2000년의 ‘가계 소비 실태 조사’를 보면 그 격차는 각각 5.34배와 6.69배였다. 지난 10년 동안 계층별 금융자산의 격차가 많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금리와 주가가 오르면 금융자산의 격차는 더 커진다. 실제로 한은의 ‘국민 계정 자료’를 보면, 2005년 14조2264억원이던 가계의 순이자소득이 지난해엔 14조9234억원으로 불어났다.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저소득층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에 비해 자산 보유 계층의 이자 수익 증가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은 “정부가 지니계수나 소득 5분위 배율만을 놓고 최근 소득 불평등 정도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라며 “오히려 금융자산 불평등 확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자산 형성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경원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과장은 “저소득층의 금융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인저축계좌(ISA)와 같은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저축계좌란 저소득층이 저축을 하면 저축액의 일정액만큼을 정부가 추가로 지원해 자산 형성을 돕는 제도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저소득층 가정이 매달 3만원씩 저축할 경우 3만원을 지원하는 아동발달계좌(CDA)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지원 액수가 적은 탓에 효과가 미미하다.
금융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관련 세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복현 교수는 “금융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이외에는 금융자산의 불평등을 줄일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주식양도 차익 과세 등 자본 이득세 정비 작업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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