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유비쿼터스 세상
글자·소리 크게…메뉴 읽어주기…뼈로 신호 전달…
따뜻한 유비쿼터스 세상 / 3. 일본의 ‘유니버설디자인’
도쿄 지하철 수이도바시역 인근 재단법인 ‘공용품추진기구’ 한 쪽에는 잡기 편한 물병부터 쉽게 신을 수 있는 신발, 뼈를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골전도 전화기, 점자로 만들어진 화장품 설명서 등이 전시돼 있다. 이른바 ‘공용품’으로 불리는 제품들이다. 공용품은 장애인, 노인만을 위한 전용 제품을 의미하진 않는다. 장애·연령·성별·언어 등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디자인하려는 개념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다른 표현이다.
1999년 설립된 공용품추진기구에서는 노인과 장애인들의 욕구를 조사하고, 이 결과를 제품 개발업체에 전달해 제품 및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기구의 가나마루 준코 업무부조사연구과장은 “5년 전부터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신는 신발·점자 설명서등 접근 쉬운 ‘공용품’ 다양
지금은 일본의 정보통신 기기 및 서비스 관련 업체들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채용된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 기기 및 서비스 접근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 정보통신 업체인 후지쓰의 종합디자인센터 가토 기미타카 센터장은 “2000년대 초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도 국외 수출을 위해 비슷한 개발 전략이 있었다”며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팔다리가 긴데 이런 점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가 얼마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유저빌러티(사용성)에 대한 고민에서 확대된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도입된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히는 것은 후지쓰가 만들고, 일본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엔티티도코모가 나눠주는 ‘라쿠라쿠’ 휴대전화 단말기(사진)다. 1999년 처음 나온 이 단말기는 올해까지 1천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라쿠라쿠 단말기는 화면의 글자를 크게 할 수 있으며, 소리가 작으면 자동적으로 소리를 높여준다. 메뉴와 서비스를 읽어주는 기능과 자주 거는 전화를 쉽게 걸 수 있는 단축키도 화면 아래에 따로 마련돼 있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편하다. 엔티티도코모에서는 이 단말기에 연결해 전화번호 등을 스캔해서 화면으로 입력시킬 수 있는 ‘스캐너 펜’이나 휴대전화의 음성신호를 진동으로 바꿔 뼈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사운드 리프’ 같은 보조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엔티티도코모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제품 가운데 미쓰비시에서 만든 휴대전화 단말기는 화면이 둘이다. 자판이 있던 곳에 둔 화면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글씨를 쓰면 바로 입력이 된다. 엔티티도코모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아오키 슈이치는 이 제품에 대해 “버튼도 누르기 힘든 사람을 위해 다양한 입력 툴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전용 휴대전화 단말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쿄에서 만난 한 시각장애인은 전용 제품이 없어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라쿠라쿠 단말기의 경우 장애인들의 의견을 들어 계속 버전을 높이고 있어 비교적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2003년에 발족된 국제 유니버설 디자인 협의회(IAUD)에 가입한 기업회원 수는 150사가 넘는다. 이처럼 업체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이유는 일본의 노인 인구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는 2015년에 65살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배경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유니버설디자인에 관심을 두었다. 업체로서는 노인들 역시 놓칠 수 없는 소비자이며 유니버설디자인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신뢰와 윤리성을 강조하는 일본 시장의 특성이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피시 등의 정보기기에 대한 접근성 설계지침을 일본공업규격(JIS) 으로 내놓았다. 지침 준수가 의무화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업체가 이를 준수하고 있다고 공용품추진기구 쪽은 설명했다.
후지쓰의 유저익스피리언스디자인부의 쓰타타니 구니오 부장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웹 등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일하는 장소와 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는 등 기업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후원 : SK텔레콤
따듯한 유비쿼터스 세상
도쿄에 위치한 공용화추진기구에는 장애인, 비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누구나 사용하기 쉽게 배려된 제품인 공용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 물품 가운데는 공용품으로 볼 수 있는 한국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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