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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외환 위기’ 그후 10년 나라안→나라밖 ‘위기의 불씨’가 바뀌었다

등록 2007-11-21 13:39수정 2007-11-21 13:46

환란 재발 막으려 외환보유 13배 불렸지만
미·중 외부변수 등 글로벌 금융위기 ‘동시다발’
“가계부실·자산거품 예방해 위기전염 막아야”
사람들은 이 날을 일러 국치일(國恥日)이라고 불렀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고도 했다. 1997년11월21일, 지금부터 꼭 10년 전의 일이다. 이날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주요 국가의 은행들이 우리가 빌려다 쓴 단기 외채를 갚으라고 독촉했는데, 우리의 곳간은 한순간에 텅비어버렸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가혹했다. 나라의 경제 주권은 국제통화기금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그로부터 10년. 나라 곳간은 가득찼고 기업들의 몸집도 몰라보게 커졌다. 이제 우리는 위기의 안전지대로 옮겨온 것일까?

#상황 1

“곳간이 비었습니다!” 콧대 높던 경제 관료들이 무릎을 꿇었다. 돈을 빌리려고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날아갔다. 당선 기쁨도 잠시, 대통령 당선자는 돈주인이 보낸 ‘면접관’ 앞에서 최종 시험을 치러야 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낚시를 즐기던 미국 재무장관의 손전화가 울렸다. 면접관의 보고 전화였다. “아주 고무적입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가까스로 국가 부도를 면하는 순간이었다.


# 상황 2

국민들은 땀 흘려 일했다. 다시는 경제 주권을 잃는 설움을 당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덕분에 곳간엔 하루가 다르게 달러가 쌓여갔다. 다시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그동안 모아둔 달러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아뿔싸! 달러의 값어치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나라보다 덩치가 몇 곱절이나 큰 나라들이 위태롭다는 위험 신호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혹시 보츠와나나 카자흐스탄 경제에 관한 보고서를 읽어 봤나?” ‘10년 전의 외환위기가 다시 일어날 위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씨티은행의 오석태 경제분석팀장은 대뜸 이렇게 한마디를 던졌다. “걸프만 지역, 사하라 사막 이남까지 세계 금융시장에 완전히 편입됐다. 씨티그룹에선 이제 보츠와나나 카자흐스탄 보고서까지 낸다. 위기?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외환위기 10년.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과거의) 위기를 잊어야, (새로운)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우린 달라졌다=21일 재정경제부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국제 금융 분야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놨다. 10년 새 나라 곳간은 몰라보게 풍성해졌다. 1997년 말 204억달러였던 외환 보유액은 올 10월 말 현재 2601억달러로 13배 불어났다. 규모로 세계 5위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의 지분 조정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지분은 0.764%에서 1.346%로 늘어났다. 지분을 늘린 4개국(한국·중국·터키·멕시코) 가운데 우리의 지분 비율 확대 폭이 76%로 가장 컸다. 그만큼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언권이 커진 것이다.

외환위기의 불씨가 됐던 단기외채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외환 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97년 9월 말 359%에서 올 6월 말 55%로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이 점에 동의한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외환위기 때는 종합금융사들이 돈을 굴리기 위해 아무런 헤지없이 외채를 들여와 문제였지만, 지금은 자유 변동 환율제 아래서 헤지를 늘리다보니 단기외채가 증가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10년 전의 외환위기가 되풀이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말한다. 오창석 국제금융센터 조기경보실장은 “외환위기를 겪은 뒤 조기 경보 시스템이 마련된데다가 우리 경제의 기초 여건이 크게 개선돼 ‘외화 유동성 고갈→환율 급등→ 국가 부도’로 이어지는 위기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세상도 달라졌다=하지만 전문가들은 위기의 ‘형태’와 ‘경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제 위기는 그 나라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 바이러스”라며 ‘전염성’의 위험을 강조했다. 오석태 팀장은 “국제 금융시장이 예전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통합됐다. 10년 전만 해도 이머징마켓이 국제 금융시장에 100% 편입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자본이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다. 더 이상 ‘국지적’ 위기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전 아시아 위기가 러시아 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을 거쳐 미국 경제에 영향을 끼치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는데,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면 세계가 거의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위기의 불씨가 미국과 중국에서 지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10년 전 위기가 내부 요인에서 시작됐다면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과 동아시아일 것”이라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불어나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극에 달하면 세계 경제가 불황과 금융시장 붕괴 등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최근의 달러 가치와 미국 자산 가치의 하락이 10년 전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또다른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경제의 기초 체력과 위험 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황인성 연구원은 “투명성을 높이고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것만이 전염을 막는 지름길”이라며 “특히 가계 부실과 자산 거품 등 바이러스에 취약한 부문들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석 실장은 “조기 경보 시스템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만큼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야 한다”며 “서브프라임 사태 전개 과정을 반영해 내년에 경보 체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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