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철강업체의 생산라인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스테인리스 냉연코일.
포스코, 대규모 ‘스테인리스 냉연설비’ 착공
포스코가 스테인리스 냉연제품 생산능력을 키우는 공사를 시작해,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연간 40만t의 스테인리스 냉연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 공사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착공식을 언론 등 외부에 알리지 않고 내부 행사로 조촐하게 치렀다. 이례적인 일이다.
새로 짓는 설비는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설비와 연화·세척 설비 1기씩으로 모두 2900억원이 투입돼 2009년 5월 완공된다. 이 설비가 완공되면 포스코의 스테인리스 냉연 생산능력은 현재의 연간 61만t에서 101만t으로 커진다.
다른 스테인리스 냉연제품 생산업체들은 “포스코의 과잉 설비로 구조조정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스테인리스 냉연제품은, 현재 국내에서 포스코가 독점 생산하고 있는 스테인리스 열연강판(핫 코일)을 새로운 공정에 넣어 더 얇은 두께로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한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자동차·전자·가구·정밀기계·사무용품 등 여러 분야에서 소재로 쓰인다.
국내에선 현재 포스코(생산능력 61만t) 외에 비엔지스틸(29만t), 현대제철(20만t), 대양금속(10만t), 기타 9개 업체(17만t)가 생산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산능력을 합치면 연간 137만t이다. 국내 생산능력 가운데 포스코가 45%를 차지하고 있는데, 2009년 새 설비가 가동되면 포스코의 생산능력은 101만t으로 늘어난다. 전체(177만t)의 57%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며, 국내 예상 수요 123만t의 82%를 채울 수 있게 된다. 재료에서 완제품까지 포스코 독과점 체제가 더 심화하는 셈이다.
다른 업체들은 포스코의 새 설비 건설로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제품의 공급 과잉이 심화돼 결국 규모가 큰 포스코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스테인리스 냉연업체 임원은 “현재도 생산설비가 30만t 정도 과잉인데, 포스코가 40만t을 늘리면 수요가 늘어도 60만t 이상 과잉이 된다”며 “포스코가 다른 업체들을 정리해 국내 스테인리스 업계를 재편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의 간부도 “독점적 스테인리스 열연 생산설비와 국내 최대의 냉연 설비까지 갖춘 포스코 외에는 죽으라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며 “포스코에 맞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냉연의 재료인 열연제품 생산설비를 스스로 갖추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첨단 설비 증설은 값싼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앞으로 철강업계의 경쟁은 국내 업체들끼리가 아니라 밀려드는 중국 제품과의 싸움이며, 이를 위해 포스코가 먼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새 설비는 기존보다 원가를 40% 줄일 수 있는 첨단 설비로 세계적인 업체들도 모두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새 설비를 가동하면서 현재의 생산설비 가운데 18만t을 줄이고, 다른 업체들에 임가공을 맡겨 생산하고 있는 18만t 설비도 국외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따라서 실제 설비 증가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삼 산업자원부 철강화학팀장은 “국내 업체들의 우려가 있어서 포스코가 지난 2005년 이사회에서 결정을 하고도 2년 동안 착공을 미뤄왔다”며 “중국에 맞설 경쟁력을 갖추면서 중소 업체들의 성장도 함께 도모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포항제철소에서 지난 1일 열린 새로운 스테인리스 냉연설비 착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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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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