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새로 드러난 재벌그룹 내부 편법거래 현황
총수 일가 회사에 ‘몰아주기’거래 등 다양한 변칙 동원
부당거래 절반이 대물림중인 ‘20위 이하’ 그룹서 발생
부당거래 절반이 대물림중인 ‘20위 이하’ 그룹서 발생
경제개혁연대가 6일 발표한 ‘재벌 총수일가 주식거래 보고서’는 지난해 4월 공개한 보고서의 후속편이다. 재벌그룹 38곳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조사에서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편법 거래가 4대 그룹에 몰려 있었던 반면, 올해는 하위 재벌그룹에서 이런 거래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편법거래 따라 배우기?=부와 경영권을 대물림하기 위해 쓰이는 수단은 거대 재벌이든 중소 재벌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재벌그룹 43곳을 대상으로 한 올해 조사에서 새로 드러난 편법 거래는 모두 21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재계 서열 20위 아래의 하위 재벌이 절반을 넘는 11건의 편법 거래 혐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국제강의 디케이 유엔씨(DK UNC)는 신성장 사업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정보기술(IT) 계열사의 지분을 총수 일가가 취득하고 다른 계열사들이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이 회사는 장세주 회장과 동생 장세욱 부회장이 지분 79%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룹에서 정보기술 서비스를 전담하도록 추진한 것과 지분 매입 시기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제개혁연대는 밝혔다. 에스티엑스그룹의 포스텍, 태광산업그룹의 태광시스템즈 등도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정보기술 계열사에 대한 전형적인 지원성 거래를 한 곳으로 지적됐다.
효성그룹은 노틸러스효성, 효성투자개발, 더클래스효성 등 3건의 편법거래 사례가 드러났다. 수입차 판매회사인 더클래스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세아들인 현준·현문·현상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인데도 효성이 회사의 이익과 무관하게 출자했다고 경제개혁연대는 밝혔다. 출자 당시 더클래스효성은 영업손실이 2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좋지 않았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매출을 거의 코오롱건설에 의존하고 있는 코오롱환경서비스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40%의 지분을 확보해 기존에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코오롱건설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 신종 세습수단 날로 진화=이번 조사 결과는 회사기회의 편취 등이 재벌 총수일가들이 신종 경영세습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과거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에서 비상장사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승계 수단으로 이용했으나, 이제 이것만으로는 재원 마련과 대물림 작업이 여의치 않다고 본 것이다. 사업 관련성이 밀접한 개인회사를 만들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이 최근 등장한 대표적 수법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는 “상법의 허점을 악용한 편법승계 수단이 날로 진화하면서 상위재벌 뿐 아니라 하위재벌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며 “문제성 거래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4월 38개 재벌그룹에서 일어난 내부 편법거래 70건을 적발한 바 있다. 그러나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한 곳은 씨제이그룹의 택배업체인 씨제이 지엘에스(GLS)와 현대백화점그룹의 시스템업체인 에이치디에스아이(HDSI) 등 두 곳에 불과했다. 편법 내부거래에 따른 지분 구조 등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확인된 4대 그룹의 편법거래는 모두 22건으로, 여전히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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