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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짐싸기’-자료없어 ‘일 못해’
고발자 색출 ‘짜증’-비자금 ‘이참에 털자’
고발자 색출 ‘짜증’-비자금 ‘이참에 털자’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압수수색에 대비한 증거인멸 작업과 과도한 입단속 등으로 ‘삼성맨’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 속에 “이 기회에 비자금 의혹을 털고 새 출발을 하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 삼성생명에 다니는 ㄱ과장은 지난달 25일 삼성화재에 대한 특검팀의 압수수색 뒤 팀장으로부터 “내일 압수수색을 나올 테니 처리 중인 서류를 모두 싸 따로 보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ㄱ과장은 “1월 한달 내내 ‘내일 압수수색 나온다’는 말을 들어,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한다”며 “1월 말께 ‘책상 속 월급통장, 여권, 업무수첩 등까지 없애라. 발견되면 압수하겠다’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는, 우리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압수 운운하는 지시를 전달하는 임원도, 전달받는 사원들도 모두 웃었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양치기 압수수색’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2 삼성 다른 계열사의 ㄱ과장은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를 다 파기하는 바람에 업무를 진행하지 못할 지경”이라며 “임원이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 차 트렁크로 달려가는 ‘충성파’도 있지만, ‘컴퓨터에서 다 지우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거나 ‘집에 있으니 내일 가져오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윗 사람들도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뭐라 하지 못하고 웃어 넘기는 일이 벌써 2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며 “한 부서는 아예 서버를 폐쇄하고, 자료를 디스켓에 담아 각자 집에 보관해, 오전에 지시를 받으면 다음날에야 일을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3 특검 수사에 대비해 증거인멸을 지시한 내부자료(<한겨레> 1월22일치 1면)가 공개된 삼성에스디아이에서는 ‘내부 고발자’ 색출에 나서기도 했다. 이 회사의 한 과장은 “일단 한씨 성을 가진 과장과 이씨 성을 가진 과장들이 지목됐는데, 왜냐하면 기사에 ‘한’(어떤) 과장과 ‘이’(지시대명사) 과장이란 표현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이씨 성을 가진 한 과장이 제보자로 몰려 임원 면담 등 고통을 겪고 있어, 동료로서 일할 맛이 안 난다”고 전했다.
#4 삼성에버랜드의 한 직원은 “에버랜드에 있는 창고에서 미술품이 발견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이번 일에 연루될까 봐 불안한 마음도 다들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에스디에스의 한 대리는 “특검이 전산센터를 압수수색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긴장하고 있다”며 “이건희 회장이 특검에 소환되든 않든 이 참에 정리할 건 빨리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삼성에스디아이의 한 대리도 “원래 지난달에 나기로 돼있던 임원급 인사가 나지 않아 임원들이 고달파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래로 전달돼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성과급도 나오지 않고, 요즘 주변에 이직을 고민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전했다.
하어영 김연기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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