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안제출도 안했는데 국내선 “2월처리”
미의회 법안거부땐 한국만 틀에 갇히는 셈
미의회 법안거부땐 한국만 틀에 갇히는 셈
2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가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행정부가 아직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지도 않은 상태이다. 정부와 재계에선 미국 의회보다 앞서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자칫 미 의회의 인준이 보장되지도 않은 가운데 국내에서만 ‘나 홀로 협정 이행 국면’으로 갈 위험도 있다.
한―미 에프티에이 발효를 전제로 한 국내 법률 개정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동의명령제’를 넣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의명령제란 경쟁당국의 심의·조사 대상인 기업이나 투자자가 당국과 사전 협의로 합의점을 찾으면 행정조처를 면제해주는 것으로, 전형적인 미국식 제도이다. 대형 승용차에 대한 특소세율 인하 조처라든지 온라인상의 저자권 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등도 한-미 에프티에이의 사전 정지작업들이다. 이 밖에도 협정 문안의 세부 조항들과 충돌하거나 맞지 않다는 이유로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률 제·개정안이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 중심으로 14개에 이른다. 비준 동의안이 통과될 경우에는 이런 법률 제·개정 작업이 더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은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을 1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후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간다. 신당 쪽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전체 의원 중 200명 가량이 한-미 에프티에이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본회의에서 비준동의안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간사인 진영 의원도 “2월 처리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보고 의지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월 임시국회 비준동의안 처리, 늦어도 8월 초 미 의회의 인준,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를 목표로 삼고 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시장에서의 선점효과, 정부의 경제운용 및 기업의 사업운용에의 불확실성 제거, 국내 정치 상황, 다른 협상 상대국 압박 등을 감안할 때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고 미 의회 요구에 따라 추가 재협상이 이뤄질 수도 있는 터에 한국에서만 의회 비준동의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협정 발효 여부와 상관없이 심각한 불균형이 생긴다.
국회가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그 다음부터 각종 법률과 제도 개선작업이 잇달아 추진된다. 국내 입법 절차에 따르면, 통상조약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는 곧 특별법 제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쪽은 “정부가 우선 집계한 법률 제·개정 건수가 24개이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세부 협정문안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이 80여개를 넘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여러 법률 제·개정 과정에서 시행되지도 않은 협정문을 준거 틀로 삼을 것으로 우려했다. 협정 문안이 미 의회의 문턱에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법과 제도만 한-미 에프티에이 틀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에프티에이에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까지 추진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애초 “쇠고기 문제는 국민 위생건강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에 에프티에이와는 별개”라고 강조하다, 최근 들어 쇠고기 개방 문제를 자주 들먹이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한―미 에프티에이를 심의할 수 없다”며 ‘쇠고기시장 전면 개방 없이는 한―미 에프티에이도 없다’는 미국 쪽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미 의회에서 논의될 움직이이 뚜렷할 때까지 우리 국회 역시 먼저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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