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극화를 넘어…동반성장의 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한 참여정부가 출범 3년째를 맞았으나 양극화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상하위 계층의 틈이 커지는 현상을 그대로 놔두면 우리 사회는 선진국 진입은커녕 심각한 분열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각 부문이 골고루 성장 혜택을 누릴 길을 찾아야 한다. 선진국 중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동반성장을 이룬 사례가 적지 않다. 매주 한차례씩 선진 모범사례를 국외 취재를 통해 살피고, 국내에서도 동반성장의 길을 열어가는 희망의 씨앗을 찾아내 소개한다.
제1부 해외서 배운다
△미국 위스콘신 노동혁신
노-사-지식인 등 협의체 ‘윈-윈 교육’
노동혁신-산업혁신-지속성장 모델로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 주도인 매디슨의 공항에는 상품광고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광고물 대부분은 매디슨과 위스콘신주의 볼거리와 자랑거리를 알리고 있다. 매디슨의 주요 건축물들을 죽 늘어놓은 한 광고판에 눈길이 머문다. “모노나테라스 컨벤션센터, 실내체육관 코홀센터, 오르페움 극장 등 매디슨에 있는 건축 명물들이 우리들 작품이며, 주정부 건물 개축도 ‘우리’가 맡았다.”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건설엔지니어니어, 전기공, 목수 등 건설 관련 노조들이 공동으로 낸 광고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건설공사를 노조에서 맡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을 풀려고 광고판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알아봤더니,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직업훈련생 중심으로 공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노조들은 위스콘신 남중부의 31개 건설업체들과 ‘위대한 위스콘신을 위한 건설노사위원회’(CLMC)라는 기관을 만들어 사업 주체로 나섰다. 산티아고 로사스 대외협력담당은 “사업의 핵심은 건설공사에 있는 게 아니다. 직업훈련 제도를 운영하면서 건설 분야의 새로운 노동자들을 길러내고, 기존 건설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게 주목적”라고 말했다. 이 기관에는 현재 약 4천명의 예비 건설노동자들이 가입해 2년 과정의 매디슨지역기술대학에 다니면서 일도 한다. 일거리가 없어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배움도 곧 노동’으로 인정해 애초 직업훈련 계약을 맺을 때 약속한 임금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이 없는 영역도 공부할 수 있다. 위스콘신대에는 우연히 만난 조 로빈슨(38)은 ‘오디세이 프로젝트’라는 인문학 전문 교양과정을 밟고 있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 소득이 최저 생계비의 150% 이하인 계층들에게 주정부와 대학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2년짜리 교육과정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대학생활은 꿈도 꾸지 못할 얘기였다. 3년 전에 텍사스에서 위스콘신으로 이사 와서 새 인생을 누리고 있다”며 앞으로 정식 4년제 학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했다. 직업훈련생들의 임금도 만만치 않다. 초기 기준임금이 목수 훈련생은 시간당 22.6달러, 전기공은 22.3달러, 단순노무직도 19.6달러로 최저임금(시간당 5.15달러)의 세 배를 넘는다. 의료보험과 개인연금은 별도로 들어주며, 6개월마다 물가상승률만큼 임금이 조정된다. 다만 현장실습까지 포함해 연간 288시간 이상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직업훈련생 임금·학업 보장 위스콘신 주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오로지 얼마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느냐에 몰두한다. 신규투자에 대한 세제·금융상의 혜택도 일정 규모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때라야 가능하다. 재정정책 또한 ‘사람 투자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3년 1월에 집권한 짐 돌 주지사(민주당)는 전임 공화당 정부로부터 무려 32억달러(3조2700억원)의 재정적자를 물려받아 긴축재정을 펴고 있지만 사람 쪽 투자는 오히려 늘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주의회에 낸 ‘2005~2006 예산안’을 보면, 저소득 노동자의 대학수강비 지원금을 2300만달러(233억원)로 34%나 늘리고, 도시 취약지구의 고용지원 예산 1천만달러(102억원)를 새로 편성했으며, 주내 16개 기술대학과 위스콘신개방대 등 사회교육기관 지원도 크게 늘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교육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돌 주지사는 “위스콘신의 성장전략은 더 많은 주민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경제환경 변화와 미래의 새로운 성장산업에 맞는 능력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곧, 노동의 질을 먼저 높이는 혁신을 하고 그래서 산업구조 혁신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이루자는 전략이다. 주정부 이전에 위스콘신 노사가 먼저 주도해온 혁신전략이다. 위스콘신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인근 오대호 연안 공업지대 제조업체들의 불황과 경쟁력 약화로 큰 타격을 받았다. 제조업은 대부분 미시간 등 인근 공업중심지의 하청기지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공업도시인 밀워키의 타격이 심했다.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몰락하고 실업자가 급증해 한때 도심이 황폐화하는 ‘도넛 현상’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먼저 나선 것은 노조와 지역내 지식인그룹이다. 미국산별노조총연맹(AFL-CIO) 위시콘신지부는 위스콘신대학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제안을 바탕으로, 밀워키와 주변 19개 제조업체들과 협약을 맺게 된다. 92년 ‘위스콘신지역훈련파터너십’(WRTP)의 출범이 바로 그 결과다. 이 단체의 에릭 파커 사무총장은 “주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다 참여 기업들의 출연금으로 비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을 재교육시켜 숙련·고임금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기능이 향상되는 만큼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성과를 거둬 19개이던 참여 기업 수가 지금은 125개로 늘어나고 훈련 참여 자격이 있는 노동자 수도 6천명에서 7만5천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자랑했다. 인구 540만명(2003년 말)의 위스콘신주에는 이밖에도 데인카운티의 ‘미래의 희망이 있는 일자리 지원사업’을 비롯해 모두 16개의 지역별·업종별 직업훈련 및 취업 알선제도와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노조와 사용자단체 대표, 교육기관, 전문가그룹, 시민사회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들이다. 주정부는 36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노동투자위원회’(CWI)를 통해서 업종·지역별 파터너십의 건의를 모으고 지원한다. 이런 노-사-정 협력모델은 위스콘신주를 미국에서 가장 교육 및 복지기반이 잘된 곳으로 만들었다. 소득 분포상 중간치의 40% 이하인 가구비율을 뜻하는 상대 빈곤율이 2003년 기준 9.2%로 미국 평균 12.3%보다 훨씬 낮다. 지난 2월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5.4%였는데, 위스콘신은 4.9%였다. 돌 위스콘신 주지사는 이처럼 노동혁신에서 산업혁신,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고급경제’라고 부른다. 매디슨(미국 위스콘신주)/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제1부 해외서 배운다
△미국 위스콘신 노동혁신
노-사-지식인 등 협의체 ‘윈-윈 교육’
노동혁신-산업혁신-지속성장 모델로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 주도인 매디슨의 공항에는 상품광고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광고물 대부분은 매디슨과 위스콘신주의 볼거리와 자랑거리를 알리고 있다. 매디슨의 주요 건축물들을 죽 늘어놓은 한 광고판에 눈길이 머문다. “모노나테라스 컨벤션센터, 실내체육관 코홀센터, 오르페움 극장 등 매디슨에 있는 건축 명물들이 우리들 작품이며, 주정부 건물 개축도 ‘우리’가 맡았다.”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건설엔지니어니어, 전기공, 목수 등 건설 관련 노조들이 공동으로 낸 광고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건설공사를 노조에서 맡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을 풀려고 광고판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알아봤더니,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직업훈련생 중심으로 공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노조들은 위스콘신 남중부의 31개 건설업체들과 ‘위대한 위스콘신을 위한 건설노사위원회’(CLMC)라는 기관을 만들어 사업 주체로 나섰다. 산티아고 로사스 대외협력담당은 “사업의 핵심은 건설공사에 있는 게 아니다. 직업훈련 제도를 운영하면서 건설 분야의 새로운 노동자들을 길러내고, 기존 건설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게 주목적”라고 말했다. 이 기관에는 현재 약 4천명의 예비 건설노동자들이 가입해 2년 과정의 매디슨지역기술대학에 다니면서 일도 한다. 일거리가 없어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배움도 곧 노동’으로 인정해 애초 직업훈련 계약을 맺을 때 약속한 임금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이 없는 영역도 공부할 수 있다. 위스콘신대에는 우연히 만난 조 로빈슨(38)은 ‘오디세이 프로젝트’라는 인문학 전문 교양과정을 밟고 있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 소득이 최저 생계비의 150% 이하인 계층들에게 주정부와 대학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2년짜리 교육과정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대학생활은 꿈도 꾸지 못할 얘기였다. 3년 전에 텍사스에서 위스콘신으로 이사 와서 새 인생을 누리고 있다”며 앞으로 정식 4년제 학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했다. 직업훈련생들의 임금도 만만치 않다. 초기 기준임금이 목수 훈련생은 시간당 22.6달러, 전기공은 22.3달러, 단순노무직도 19.6달러로 최저임금(시간당 5.15달러)의 세 배를 넘는다. 의료보험과 개인연금은 별도로 들어주며, 6개월마다 물가상승률만큼 임금이 조정된다. 다만 현장실습까지 포함해 연간 288시간 이상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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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훈련생 임금·학업 보장 위스콘신 주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오로지 얼마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느냐에 몰두한다. 신규투자에 대한 세제·금융상의 혜택도 일정 규모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때라야 가능하다. 재정정책 또한 ‘사람 투자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3년 1월에 집권한 짐 돌 주지사(민주당)는 전임 공화당 정부로부터 무려 32억달러(3조2700억원)의 재정적자를 물려받아 긴축재정을 펴고 있지만 사람 쪽 투자는 오히려 늘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주의회에 낸 ‘2005~2006 예산안’을 보면, 저소득 노동자의 대학수강비 지원금을 2300만달러(233억원)로 34%나 늘리고, 도시 취약지구의 고용지원 예산 1천만달러(102억원)를 새로 편성했으며, 주내 16개 기술대학과 위스콘신개방대 등 사회교육기관 지원도 크게 늘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교육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돌 주지사는 “위스콘신의 성장전략은 더 많은 주민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경제환경 변화와 미래의 새로운 성장산업에 맞는 능력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곧, 노동의 질을 먼저 높이는 혁신을 하고 그래서 산업구조 혁신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이루자는 전략이다. 주정부 이전에 위스콘신 노사가 먼저 주도해온 혁신전략이다. 위스콘신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인근 오대호 연안 공업지대 제조업체들의 불황과 경쟁력 약화로 큰 타격을 받았다. 제조업은 대부분 미시간 등 인근 공업중심지의 하청기지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공업도시인 밀워키의 타격이 심했다.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몰락하고 실업자가 급증해 한때 도심이 황폐화하는 ‘도넛 현상’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먼저 나선 것은 노조와 지역내 지식인그룹이다. 미국산별노조총연맹(AFL-CIO) 위시콘신지부는 위스콘신대학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제안을 바탕으로, 밀워키와 주변 19개 제조업체들과 협약을 맺게 된다. 92년 ‘위스콘신지역훈련파터너십’(WRTP)의 출범이 바로 그 결과다. 이 단체의 에릭 파커 사무총장은 “주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다 참여 기업들의 출연금으로 비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을 재교육시켜 숙련·고임금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기능이 향상되는 만큼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성과를 거둬 19개이던 참여 기업 수가 지금은 125개로 늘어나고 훈련 참여 자격이 있는 노동자 수도 6천명에서 7만5천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자랑했다. 인구 540만명(2003년 말)의 위스콘신주에는 이밖에도 데인카운티의 ‘미래의 희망이 있는 일자리 지원사업’을 비롯해 모두 16개의 지역별·업종별 직업훈련 및 취업 알선제도와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노조와 사용자단체 대표, 교육기관, 전문가그룹, 시민사회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들이다. 주정부는 36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노동투자위원회’(CWI)를 통해서 업종·지역별 파터너십의 건의를 모으고 지원한다. 이런 노-사-정 협력모델은 위스콘신주를 미국에서 가장 교육 및 복지기반이 잘된 곳으로 만들었다. 소득 분포상 중간치의 40% 이하인 가구비율을 뜻하는 상대 빈곤율이 2003년 기준 9.2%로 미국 평균 12.3%보다 훨씬 낮다. 지난 2월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5.4%였는데, 위스콘신은 4.9%였다. 돌 위스콘신 주지사는 이처럼 노동혁신에서 산업혁신,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고급경제’라고 부른다. 매디슨(미국 위스콘신주)/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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