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수출 늘려야 성장목표 달성”
한은 “물가 못 잡으면 더 큰 혼란”
한은 “물가 못 잡으면 더 큰 혼란”
“강만수 경제팀이 이른바 ‘747공약’의 덫에 너무 깊숙이 걸려있다.”
외국계 민간은행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기획재정부와 한은 사이의 최근 불협화음 원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경제팀이 성장률 끌어올리기에 무리한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그 뿌리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6%로 낮췄지만, 여전히 국내외 경제분석 기관들의 전망치를 크게 웃돈다. 미국 경제가 침체로 접어들고 있어 경제팀은 더욱 초조해졌다. 강만수 장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최중경 제1차관이 “환율을 올려야 한다”고 대놓고 주문하는 이유다. 금리를 내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리자는 것이다.
강 장관은 지난 25일 한 강연에서 “경상수지는 악화되는데 환율은 떨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지금 그 때와 비슷하다”며 환율 상승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환정책은 재정부 몫이니, 재정부가 나서면 된다. 문제는 재정부가 통화정책까지 좌지우지하려는 데 있다.
한국은행도 미국의 경기 흐름으로 볼 때 우리 경제도 하강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물가가 훨씬 더 큰 불안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감수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시각이다.
한은의 한 간부는 “물가가 더 오르면 시장 전반에 큰 혼란이 일고, 그것은 오히려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에 해가 된다”며 “따라서 섣불리 금리를 내리는 것은 혼란에 불을 지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올라 실질금리가 하락하고 있는만큼, 지금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것도 통화완화”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내림에 따라 유럽에서도 금리 인하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지만, 유럽중앙은행(ECB) 쟝 클로드 크리셰 총재가 “물가상승을 억제하지 못해 저성장에 늪에 빠져든 1차 석유파동 때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없다”며 거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음 급한 재정부는 금리를 내려야할 이유를 하나둘씩 늘려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대기도 한다. 재정부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면서도, 금리를 내려 소비와 투자가 늘면 경상수지 적자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거론하지 않는다.
부작용이야 어찌 되든, 재정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단기 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다. 또 경제주체들 사이에 희비는 크게 갈린다. 수출기업들은 든든한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환율상승은 가뜩이나 심한 물가고를 더 가중시켜 서민 살림을 어렵게 한다. 금리인하는 빚많은 가계에 도움이 되겠지만, 임금 노동자 등 고정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집값을 다시 끌어올릴 위험도 크다. 수출은 크게 늘어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물가급등으로 내수 경기가 나빠지면 취업 희망자들에겐 곧바로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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