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재벌그룹 유보율과 현금성 자산 보유 현황
10대 재벌계열 유보율 788%…현금성 자산 21% ↑
“경기불안·출총제 폐지 뒤 M&A 대비해 투자 아껴”
“경기불안·출총제 폐지 뒤 M&A 대비해 투자 아껴”
지난해 10대 재벌그룹을 비롯한 상장 제조업체들이 막대한 이익을 현금으로 쌓아두고 투자에는 인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존 사업의 설비 확장이나 연구개발을 통한 새 기술·상품을 내놓기보다,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를 염두에 두고 인수합병(M&A) 등에 대비하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으로 풀이된다.
9일 증권선물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10대 재벌 계열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제조업체들은 평균 유보율이 787.9%였다. 2006년 말의 694.7%보다 큰 폭 늘어난 것으로, 잉여금이 자본금의 8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유보율이 높으면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을 위한 자금 여력이 넉넉하다는 것을 뜻하지만, 투자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는 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 546개 제조업체의 지난해 말 유보율은 전년 대비 64.77% 포인트 늘어난 675.57%였다. 전체 기업들이 잉여금을 안에 쌓아두고 투자를 아끼는 경향이 커지고, 규모가 큰 재벌그룹일수록 더욱 내부 유보에 힘썼음을 보여준다. 삼성그룹의 유보율이 1489%로 가장 높았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에스케이·롯데그룹 등도 유보율이 1000%를 웃돌았다.
안에 쌓아둔 이익 중에서도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었다. 현금성 자산은 현금·수표·당좌예금 등 대차대조표상의 현금·현금성 자산과 정기 예·적금 등 단기금융상품 등의 총합으로, 현금처럼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자산이다. 지난해 말 10대 재벌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33조5184억원으로 전년보다 20.9% 늘어났다.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법인 545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62조7447억원으로 19.4% 늘었다. 특히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전체 상장사 현금성 자산의 53.4%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삼성그룹이 11조872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차·현대중공업·엘지·롯데그룹 등이 뒤를 이었다.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현대중공업그룹으로 1년 새 165.94%(3조608억원) 늘었으며 삼성·엘지도 증가 폭이 컸다.
상장 제조업체들이 투자를 아끼고 현금 지출을 자제한 이유는, 우선 미국 경기 침체와 중국의 성장 둔화 등 세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내수시장에서도 수익성이 보장되는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정권교체로 출총제 폐지 가능성이 높아지며 인수합병을 대비해 기업들이 ‘실탄’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출총제 폐지를 대비해 대기업들은 다른 기업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위험을 느낀 중견·중소기업들도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방어하기 위한 현금 유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출총제가 폐지되면 대기업의 기업 사냥은 활발해지겠지만, 고용이나 내수를 활성화하는 설비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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