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대국민사과문 발표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재용씨 거취 어떻게 될까
삼성쪽 “유배가 아니라 일 하러 가는 것”
순환출자 등 논란 해소 뒤 ‘복귀’가능성
삼성쪽 “유배가 아니라 일 하러 가는 것”
순환출자 등 논란 해소 뒤 ‘복귀’가능성
지난 22일 삼성이 쇄신안을 발표하며 이재용 전무가 고객총괄책임자(CCO)라는 직책을 떼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거취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하지만 적어도 ‘경영수업’을 통해 정당성 명분을 쌓아 경영권 승계를 받겠다는 구도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무의 거취와 관련해, 삼성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삼성전자의 고객총괄책임자직을 사임한 뒤 주로 여건이 열악한 국외 사업장에서 임직원과 함께 체험하고 시장개척 임무를 맡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략기획실의 한 임원은 “오지 같은 국외 사업장이나 법인으로 옮기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내에 머물면서 여건이 어려운 시장개척 등을 맡으며 주로 국외에 나가서 현장을 체험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삼성은 23일 다시 공식적으로 “이 전무의 거취는 삼성전자 인사에서 결정되며 국외로 나갈지 국내에 머물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비즈니스 환경은 어려운 곳의 개척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아무튼 이 전무가 밖으로 나가는 건 ‘유배’가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것”이라며 ‘경영수업’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했다.
삼성그룹 안에서 이처럼 이 전무의 국외활동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에 삼성이 공식적으로 밝힌 이 전무의 거취는 누가 지시한 게 아니라 이 전무 스스로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전무가 국내에 머물 경우 외부에서 그룹과 관련한 무수한 청탁이 들어오거나 내부 파벌이 형성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귀띔했다. 앞으로 인사나 조직개편에서 자칫 이 전무에게 힘이 쏠리는 양상이 벌어질 경우 큰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전무에 대한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은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의 사례와 유사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창업주 3세인 도요다 아키오는 도요타자동차가 어려운 시절 중국사업본부를 맡다가 2006년 일본으로 돌아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일본 언론들은 올해 안에 도요다 아키오가 전문경영인을 이어 사장에 오를 것으로 내다보며, 이를 쇼군이 천황에게 권한을 되돌려줬던 ‘대정봉환’에 비교하고 있다. 이학수 부회장은 “이 회장이 아직 승계 문제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으며 앞으로 이재용 전무가 주주·임직원·사회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승계할 경우 회사나 이 전무에게 불행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요다 아키오가 99년 임원 승진을 할 당시 오쿠다 히로시 사장이 했던 말도 “도요다 일가니까 임원까지는 기회를 주는 거다. 그 다음부터는 실력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무의 경우, 몇년간 국외 사업을 통해 명분을 쌓고 국내에 돌아와 전문경영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 내에선 “이 전무가 돌아오더라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오너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삼성이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등을 포함한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검토해 보겠다’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순환출자 같이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정리’한 뒤 승계를 하겠다는 구도인 것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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