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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할인점 규제 풀면서 웬 재래시장 육성?”

등록 2005-04-24 19:20수정 2005-04-24 19:20

대형유통점 규제완화 법개정 추진
중소상인 “지역경제 거덜” 서울시청앞 시위

“태백시 인구의 65%가 중소상공인 가족들이에요. 대형마트 하나면 재래시장 7개가 날아간다는 게 상식입니다. 65%가 구멍가게나 재래시장에서 소소한 물건 팔아 생계를 잇는데, 이마트가 들어서면 어떡합니까. 오죽하면 신세계 본사로 쳐들어가자며 상경했겠어요.”(태백 황지자유시장 상인)

“이마트가 들어가면 지역경제가 살아나요. 지방에선 대형마트를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하고요. 태백시만 해도 몇몇 지역단체들이 ‘제발 입점해 달라’는 요청서를 보내왔다니까요.”(신세계 관계자)

이달 말 대규모 점포 출점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앞두고 지방 중소상인과 대기업 대형할인점업계 간에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24일 매장면적 3천㎡ 이상 대규모 점포의 등록요건을 완화하고 교통영향평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정안을 30일까지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백시경제인연합회 등이 주도하는 ‘안티이마트운동본부’는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시청앞 광장 인근에 집회신고를 내고, 태백·김제·논산 상인들이 날마다 5~6명씩 돌아가며 시위를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신세계 이마트가 세번째 매장을 추진하는 등 ‘빅3’ 할인점들이 모두 출점 경쟁을 벌여 기존 상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일단 ‘전국재래시장연합회’(가칭) 준비 모임을 다음달 초 대전에서 연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도 지난달 대형할인점 규제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낸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판 월마트 논란’이 ‘한국판 이마트 논란’으로 옮겨붙을 전망이다. 월마트는 ‘에브리데이 로 프라이스’(EDLP)라는 전략 아래 연간 270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세계 최대 할인점 업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선 제조업체 이윤을 쥐어짜고 중소상인들의 생계터전을 가로채 실업을 증가시켰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월마트가 노인 고용을 늘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주요 일간지에 자사의 기여도를 강조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냈다.

국내 대형할인점들은 앞다퉈 지방 점포 수를 늘리는 등 확장전략을 펴고 있다. 현재 점포 수가 70개인 이마트는 2007년까지 100호점 돌파를 목표로 터 확보 등을 마쳤고,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지방 할인점을 인수하는 등 선두업체 따라잡기에 바쁘다. 현재 국내에선 신세계 이마트가 지난해 7조원대 매출로 21조원대 업계 총매출의 33%를 차지하며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할인점 시장은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이마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토종 할인점들이 시장의 63.2%를 차지했으며, 프랑스계인 까르푸와 미국계인 월마트가 뒤을 잇고 있다.

문제는 재래시장의 구조개선은 한없이 더딘 반면, 대형할인점은 발빠르게 이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구 15만명당 할인점 하나가 적정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마트는 인구 5만명 수준의 태백시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이마트 반대를 위해 상경시위 중인 김항성(44·서점 경영)씨는 “인근 카지노와 태백시 재래시장 상권 사이에 놓인 개발부지에 이마트가 들어서면 주민들끼리 물건을 팔아 먹고사는 지역경제가 거덜난다”며 “할인점 입점을 3년까지 유보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우리가 경쟁력을 기르려면 5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상인들은 “재래시장 살리기는 지붕 뚜껑 개량만으론 어림없다”며 “재래시장 상권에 복합쇼핑몰 건물을 짓고 기존 상인들이 입점해 장사하는 현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지역 생산품’ 구매로 현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형할인점들의 주장도 불신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는 해외 직접구매를 통해 현재 16%에 그치는 수입품 비중을 늘리고 가격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마트는 실제 중국 현지업체를 발굴해 국내에서는 1만2500원짜리 수납함의 값을 38% 낮추기도 했다.


각 시·도 지역경제과에선 대형할인점을 밀어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래시장 지원은 시늉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 지역경제과의 한 담당공무원은 “최근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지역의견을 수렴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할인점 규제가 이렇게 풀리면 사실 재래시장육성특별법과는 엇박자가 난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지원 업무를 하는 또다른 공무원도 “지방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들끓고 난리”라며 “교통영향평가는 기존에도 제대로 안 되기 일쑤였는데 더 유명무실해지겠다”고 혀를 찼다.

한국유통학회장 변명식 교수(장안대 유통경영학)는 “전국 1654개 재래시장 가운데 3분의 1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600개는 지원 없이는 사라질 테고 나머지는 없어져야 할 시장들”이라며 “지역상인들의 자구노력과 함께 대기업의 ‘절제 출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중앙대 산업경제학)는 또 “우리는 할인점부터 슈퍼·재래시장 등 온갖 유통업계가 함께 경쟁하는 게 문제”라며 “규모 다툼보다는 지역 특성을 살린 차별화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할인점들이 10억~20억원을 들여 건설하는 ‘별도 진입도로’ 개설 과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대행하게 된다. 또 입지규제도 완화돼 대형할인점의 자연녹지 진입이 실질적으로 쉬워진다. 개정안은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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