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 사례
유동성 위기설 두산·금호…
주가 상승기에 인수 합병
무리한 차입 결국 짐으로
주가 상승기에 인수 합병
무리한 차입 결국 짐으로
금호아시아나와 두산 등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인수 당시 ‘성공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빠졌던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기업환경의 변화 가능성을 가볍게 보고, 이전의 성공경험이나 요인에 집착한 결과들이 지금 위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그룹 해체 위기까지 겪었던 두산은 2000년 이후 경제환경이 나아지면서 외환위기 때 매각 작업을 통해 축적된 인수·합병 역량을 바탕으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두산의 성공 신화를 지켜본 다른 기업들도 또다른 성공 신화를 꿈꾸며 따라하기 시작했다. 금호는 2006년 12월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한 뒤, 여세를 몰아 대한통운마저 올해 3월 품에 넣었다. 유진그룹도 하이마트를 인수했으며,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에스티엑스도 인수·합병을 통해 내로라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두산의 성공 경험은 두산을 포함해 다른 기업들을 ‘성공의 덫’에 빠뜨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장비 기계 분야의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면서 2007년 7월 미국의 중장비업체인 밥캣마저 인수했다. 그러나 밥캣 인수 상황은 이전과는 달랐다.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할 당시 코스피 지수는 1000선에도 이르지 못한 시기여서 비교적 싼 값에 쌀 수 있었다. 반면에, 밥캣 인수 때는 미국의 건설경기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인수를 위해 차입한 돈이 밥캣의 올해 에비타(EBIDTA, 세금·이자·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의 7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과도한 약정도 여기서 비롯됐다.
익명을 요구한 인수·합병 전문가는 “통상적으로 에비타 5~5.5배 수준으로 대출을 해주는 게 관례”라며 “대우종합기계를 다른 기업이 낸 가격보다 두배나 비싼 가격에 인수했지만,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위험이 가려졌던 두산의 성공 경험이 달라진 환경을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호도 두산의 밥캣 인수 상황과 엇비슷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는 주가가 고점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우건설 인수 때 과도한 풋백옵션(나중에 특정가격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을 걸었다. 대우건설 인수전이 벌어졌던 2006년 7월 주가는 1만8000원대를 오르내렸으나, 부족한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당 3만4천원에 풋백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투자자들에게 준 것이다. 인수·합병 분야의 다른 전문가는 “대부분의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든 선진국으로 갈수록 경영 성과가 갑작스럽게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주가 상승으로 모든 부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도 인수를 위한 종잣돈 7천억원을 우리은행(3천억원)과 다른 재무적 투자자들(4천억원)로부터 마련했다. 그래도 인수에 필요한 1조9500억원에는 1조2500억원이 부족해 농협으로 다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과다한 차입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에선 “주가 상승 여부는 신의 영역인데, 결과만 놓고 이들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는 “주가 상승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경기 전망은 할 수 있다”며 “주식시장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이러한 인수·합병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용인 이형섭 기자 yyi@hani.co.kr
M&A ‘달콤한 덫’
이용인 이형섭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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