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기술보다 생산성 높이기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승부수가 ‘치킨게임’을 끝낼까.
최근 국내외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잇달아 감산이나 구조조정 모색에 들어간 가운데,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선도기술 개발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양산기술 향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반도체의 상징 같던 ‘황의 법칙’도 올해엔 깨졌다.
삼성전자는 11일 “지난 2월 개발한 3차원 셀스택 기술을 32Gb와 64Gb제품에 내년부터 먼저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매해 메모리집적도가 2배씩 올라간다는 내용의 황창규 전 반도체총괄 사장(현 기술총괄)의 이름을 딴 ‘황의 법칙’에 따르자면, 올해엔 삼성전자가 128Gb제품을 내놓아야 하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해 선도기술을 과시하던 반도체설명회도 열지 않기로 했다. 황 사장이 자리를 옮긴 첫해라 공교롭긴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나노공정 진화에 따른 기술적 어려움이 커지고 무리한 선도기술 과시가 실익이 없다는 논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삼성전자의 이런 방침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경쟁업체들이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한계원가’에 달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감산에 들어갈 때, ‘남은 체력’을 다 써서라도 이 치킨게임의 승자로 남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반도체업계의 출혈경쟁 여파로, 디램 가격은 개당 6달러에서 1달러 이하로 급락한 상황이다. 과거 가격하락기에는 모든 업체들이 조금씩 감산을 해 물량조정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사이클이 형성됐지만, 1위 업체인 삼성전자가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업계 상황은 삼성전자에 유리한 편이다. 하이닉스는 최근 채산성이 떨어지는 200㎜ 라인을 축소하거나 중단시키면서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줄였고, 일본 엘피다가 이달 중순부터 디램 생산량을 10% 축소키로 했으며, 대만의 파워칩도 디램 생산량을 최대 15% 줄일 것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른 업체들이 합종연횡으로 대응을 한다든지, 다른 업체들이 쓰러지기 전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시 한계원가에 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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