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태추이 일단 관망만
원-달러 환율이 거래일수로 최근 나흘 사이 200원 넘게 뛰는 동안, 외환시장에서 당국의 움직임은 전과는 크게 달랐다. ‘선’을 넘어서면 공격적으로 달러를 내다팔던 모습은 사라졌다. 류현정 한국씨티은행 부장은 “하루 평균 10억달러 가량의 매도 개입으로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만 있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최후의 방패막으로 아껴 쓰겠다”고 밝힌 것은 큰 흐름을 거슬러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7일 서울 외환시장의 55억달러 규모 거래 가운데 7억달러가 자산운용사들의 환헤지를 위한 거래였다”며 “기술적으로 급등한 환율은 급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정부로서도 지금으로선 더 꺼내들 카드가 마땅치 않다.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대규모로 풀었다가, 세계 금융위기는 길어지고 외환보유액만 감소하면 더 큰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위기상황이 닥치면 230억달러를 갖다 쓸 수 있지만, 이 카드를 꺼내기 힘들다. 여러 나라가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정부가 나서서 달러를 빌리면 ‘위기’임을 자인하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정부는 시장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만큼 사태의 추이를 보며 기다려 보겠다는 쪽이다. 유가 하락으로 상품수지 적자가 줄어들고, 외국인 주식매도세가 수그러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8~9월 주춤하던 외국인 주식매도세는 이달 들어 다시 강해지고 있다.
속수무책인 정부는 애꿎은 ‘투기세력’을 탓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기업들의 투기적 거래 현황을 파악하겠다고 7일 국정감사에서 엄포를 놓자, 이명박 대통령도 8일 재향군인회 오찬간담회에서 “달러를 사재기하는 기업과 국민이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 외환딜러는 이에 대해 “투기적 거래가 끼어 있어야 형성되는 게 외환시장”이라며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린다”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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