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환헤지 해둘걸…정유·항공,‘때늦은 후회’

등록 2008-10-09 21:40수정 2008-10-10 18:52

원자재 수입해 내수 판매하는 기업들의 환율급등 피해
원자재 수입해 내수 판매하는 기업들의 환율급등 피해
환율 ‘직격탄’ 원자재수입업체들
수년간 원화강세
위험대비 소홀
“몇 년 동안 원-달러 환율은 내리막길을 탔다. 그러다가 워낙 갑작스럽게 환율이 오르다 보니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한 시절’이 너무 길다 보니 관성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외환 전문가는 ‘환율 폭탄’에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비상 국면을 예측하고 미리 대처하지 못한 책임은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들한테 있지만, 기업의 대응도 늦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알짜 중소기업들이 투기적 통화옵션상품 ‘키코’에 잘못 가입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상당수 대기업도 당연히 했어야 할 환헤지를 하지 않아 많게는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입고 있다. 특히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내수 시장에 파는 정유, 항공, 식품회사들의 타격이 크다.

최근 환율이 폭등하자 미처 환헤지를 하지 못했거나, 했더라도 비율이 적은 곳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바쁘다. 원자재 구입 등 비용은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데, 수입의 대부분은 원화로 들어오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가파르게 치솟을 수밖에 없다.

정유사들의 사정이 가장 급하다. 정유사들의 환헤지 비율은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에스케이에너지의 경우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 늘어나는 손실은 3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평균환율이 929.20원이었고, 올해 10월9일까지 평균환율이 1020.48원인 점을 고려하면 환차손이 무려 3천억원 가까이 된다.

이유는 원유 도입 구조에 있다. 정유사들은 ‘유전스’ 방식으로 원유를 산다. 유전스는 60일, 90일 등 정해진 기간 뒤에 결제 시점 환율 기준으로 돈을 갚는 외상매입이다. 그런데 환율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앞으로 원유 도입대금을 갚기 위해 달러로 환전해야 할 원화 액수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정유사들이 고도화시설 투자를 위해 상당 규모의 외화 차입을 한 점도 짐이 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3분기에는 대부분의 정유회사가 대규모 적자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항공사들도 환율 폭등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국내 고객이 많아 수입의 65%는 원화로 들어온다. 그러나 항공기 구입료, 연료비, 외국공항 이용료, 보험료 등 비용의 70%는 달러로 나간다. 환율이 100원 오르면 연간 2천억원씩 비용이 상승한다. 대한항공은 올해 들어 환헤지 비중을 늘리기 시작해 최근에는 30% 수준까지 환헤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도 국제 곡물시장에서 원맥, 원당, 옥수수를 수입한 뒤 밀가루, 설탕, 식용유를 생산해 주로 국내 시장에 판매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씨제이제일제당 관계자는 “환율이 100원 오르면 5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고 밝혔다.

원자재 수입 등 비용 쪽의 환헤지를 기업들이 소홀히하게 된 계기는 정부가 2004년 달러당 1140~1150원의 방어선을 사실상 포기하면서부터였다. 대표적인 수출업체인 조선업체들은 4년치에 이르는 막대한 수주물량을 헤지하기 위해 달러를 계속 팔았지만(선물환 매도), 원자재 수입업체들은 원화가 계속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단’하고 환헤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수입업체들은 환율이 상승할 것에 대비해 ‘선물환 매수’(일정 기간 뒤에 특정 가격에 달러를 사는 계약) 헤지를 해놨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환율 전문가는 “‘환율이 계속 내려갈 텐데 뭐하러 원자재 구매를 위해 헤지를 하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전했다. 내수 기업의 경우 환율이 올라도 소비자가격에 전가시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환율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느냐”는 기업들의 항변도 나름의 일리는 있다.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일부 전문가와 금융당국이 “환율이 한없이 내려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수차례 경고했던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지금 부산을 떠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

이용인 이재명 윤영미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