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내년 살림계획 바꿔야하나…’ 큰 고민
환율변동폭 커 사업계획 수립 난항
자금 확보위해 어음 발행 늘리기도
채용 조정·투자 축소 등 검토 이어져
자금 확보위해 어음 발행 늘리기도
채용 조정·투자 축소 등 검토 이어져
요동치는 환율에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올해 사업계획은 변함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업계 안팎에선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3분기 실적 발표 이후엔 부분적으로 투자 축소나 신규채용 조정 등도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유가가 지금 예측이 되나요? 안 짤 순 없으니까 일단 ‘감’으로 짜고 있는 거죠.” 한 대기업의 임원은 13일 내년도 사업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며칠 새 환율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3주 넘게 지속했던 ‘환율 롤러코스터’에 대부분의 기업은 ‘앞날 예측이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 보니 각 기업들의 내년 사업계획 수립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씨제이제일제당의 한 임원은 “지금 같은 금융위기가 연말 또는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되면 내수판매 감소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사업계획도 극히 보수적으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직 사업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지만 안전과 서비스에 필요한 사항을 최우선으로 투자하고 불요불급한 사안은 최대한 미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외화 사재기’까지는 아니지만, 원화 환전을 가능한 최저 수준에서 유지하려는 기업들도 있다. 대기업 계열인 한 부품회사의 담당 직원은 “외화차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환율이 워낙 요동치다 보니 원자재 수입자금을 확보해두려는 차원에서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공시에서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일단 자금을 확보해두고 보자’라는 경향 때문이다. 최근 2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엘지이노텍은 “유동성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만일에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고도화시설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던 정유사들은 애초 계획보다 시설투자비가 급등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 한 정유사는 투자 시기를 미루는 것을 구체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는 항로단축 방안을 수립하고 인력채용 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비용절감을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최근 안정됐다고는 하나 올해 폭등했던 국제유가 탓에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채용 규모가 계획 대비 70% 수준에 머물렀다. 대한항공도 “아직까진 하반기 200명으로 계획된 인원을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현재와 같은 고환율 상태와 그에 따른 수요감소 추세가 지속될 경우 규모를 축소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업계는 달러수요를 줄이기 위해 고심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신규 항공기 금융리스 때에도 가능하면 원화기준 계약을 추진해 외화부채를 꾸준히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차입금을 달러 중심에서 엔화, 유로화 등으로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라며 “연간 달러 부족액에 대해 헤지 중인데 추가 헤지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상반기에 수입한 곡물의 재고가 남아 있는 만큼 당분간 곡물 수입을 유보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가격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환율 폭등이 진정될 때까지 곡물 수입을 미루고 있다”며, “환율이 연초 대비 50% 이상 올라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이 안정되고, 멜라민 때문에 어려운 제과업체 등의 상황이 개선되는 시점에 밀가루와 설탕 등의 가격을 올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영희 이용인 윤영미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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