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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상처뿐인 ‘상생 약속’…갈등 더 커졌다

등록 2008-10-27 19:49수정 2008-10-27 19:51

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석유화학-플라스틱업계 ‘상생협약’ 그후 1년
“협의회구성 조항 삭제돼” 문서위조 공방까지
원자재값 상승 등 양쪽 이해관계 수년간 곪아
실질적 조정없는 ‘대기업-중기’ 현주소 보여줘
“지난해 11월13일 상생 협약서의 내용이 애초 협의 내용과 다르게 변경됐다. 당일 합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서명지에 서명만 했다.”(조봉현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협약서의 내용을 임의로 삭제하지는 않았으며, 우리는 협약사항을 이행하고 있다.”(허원준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

지난 6일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장에서 터져나온 이런 진실게임 공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현실에서 ‘상생’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석유화학협회)와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프라스틱연합회) 대표가 국감장에까지 나와 시비가 붙은 사연의 시발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1월13일 양쪽은 당시 김영주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화학-플라스틱 산업 간 상생협력 협약서’를 맺었다.

석유화학협회는 삼성토탈, 엘지화학, 에스케이에너지, 호남석유화학 등 대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반면에 프라스틱연합회는 이들 대기업으로부터 폴리에틸렌, 폴리염화비닐 등의 원료를 공급받아 파이프, 필름, 비닐백 등 플라스틱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1월 행사는 이른바 ‘대-중소기업 상생 협약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협약식을 맺고 난 뒤 양쪽의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깊게 파이기만 했다. 프라스틱연합회 쪽은 “협약식을 맺고 나서 살펴 보니 협약식 전날 양쪽이 합의한 핵심 조항이 빠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협의회를 구성, 운영한다’는 문구가 삭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석유화학협회 쪽은 행사 당일 사전 조정을 했다는 입장이고, 프라스틱연합회 쪽은 “연락을 받은 사람이 없다. 비공식 모임에선 석유화학협회 쪽이 임의 삭제 사실을 인정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한테서 조달하는 원자재 가격 결정시점
중소기업이 대기업한테서 조달하는 원자재 가격 결정시점
상생협의회 구성은 플라스틱 업계 입장에선 물러서기 힘든 ‘마지노선’과 같았다. 애초 원자재값 상승에 찌든 플라스틱 업계에선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 방안을 협약서에 넣자는 입장이었으나, 산업자원부가 중재에 나서 ‘상생협의회에서 논의하자’는 식으로 절충이 됐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계에서 내놓기로 한 상생기금 100억원에 대해서도 프라스틱연합회는 숙원 사업인 ‘플라스틱 재활용 시설’을 짓고 싶어 했다. 재활용을 하면 새 재료를 구입하는 것보다 싸기 때문에 원료값 부담을 일정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상생협의회 구성’ 조항이 삭제되면서 논의할 마당이 없어졌다고 프라스틱연합회는 주장했다. 프라스틱연합회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행위로 과징금을 맞은 석유화학 대기업들이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해 요식행위로 상생 협약식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석유화학협회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 플라스틱 업계가 재활용 원료를 많이 쓸수록 석유화학협회 회원들의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석유화학협회는 프라스틱연합회 쪽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실질적인 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명한 ‘상생 협약서’는 휴짓조각이 돼 버렸다. 상생협의회 구성을 놓고 양쪽이 부딪히면서 당시 협약서 안에 들어있던 △플라스틱 산업의 기술기반 역량 강화 △플라스틱 산업의 생산현장 애로 기술지도 △교육·훈련 및 기술혁신 세미나 개최 등은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화해의 장으로 마련한 상생 협약식이 되레 양쪽의 싸움을 부채질하는 꼴이 돼 버린 셈이다.

양쪽의 다툼은 2003년 후반기부터 원유값이 상승하며 나타난 ‘5년 전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원자재 공급가격 인상에 맞서 플라스틱 업계 쪽은 ‘가격 예시제’ 도입을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원자재를 공급할 때 수량만 표시하고 실제 가격 통보는 한달 뒤 세금계산서를 발급할 때 하는 관행을 고쳐, 원료 구매 시점에 가격을 알 수 있도록 바꿔달라는 거였다. 원가를 계산할 수 없으니 제품가격을 매기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안정적인 경영을 하기 어렵다고 플라스틱 업계는 호소한다. 이에 대해 석유화학협회 쪽은 지난 24일 지식경제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원료 공급 때 곧바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는 약속을 했으나 시기는 회사별로 자율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혀 실제로 약속이 지켜질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 업계는 제품을 만들어 건설업계(파이프), 반도체업계(반도체 필름), 농협(농사용 비닐) 등 주로 ‘대기업’한테 판매한다. 협상력이 떨어지다 보니 판매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입구’(원자재 구매)와 ‘출구’(판매)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는 플라스틱 업계가 다른 중소기업들과 달리 ‘대놓고’ 싸워 온 것은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용구 의원(자유선진당)은 지식경제부 감사에서 “이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의 전형적인 사례로,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의 실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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