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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20년 하청업체 설움이 ‘20년 독점납품’ 신화로

등록 2008-11-03 19:10수정 2008-11-03 19:14

미국 연방정부 외국산 조달 금액 추이
미국 연방정부 외국산 조달 금액 추이
‘바늘구멍’ 미 조달시장 공략 성공기
‘개인정보 보호필름’ 만든 세화피앤씨
국외박람회 한달에 한번꼴 돌고 돌아
“성과없이 돌아올땐 죽고 싶은 마음도”

컴퓨터와 휴대전화 화면 등에 붙이는 ‘개인정보 보호필름’ 시제품을 들고 뛰어다닐 때 그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4년 한 신용평가기관은 “3M(쓰리엠)에서 하는 것을 당신들이 할 수 있겠냐”며 핀잔만 줬다. 은행에서도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라며 대출문을 닫았다. “박사라도 한 명 있어야…”라며 난색을 표하는 곳도 있었다.

온갖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구자범(56) 세화피앤씨 사장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품 개발을 시작한 지 4년 만인 올해 9월 말, 그는 벽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 정부 조달시장 입성에 성공했다. 직원 60명의 중소기업이 미국의 거대 기업인 쓰리엠을 물리치고 20년 동안 연방정부 납품 독점권을 획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는 세화피엔씨와 쓰리엠 두 곳뿐이다. 이 필름을 컴퓨터, 휴대전화 화면 등에 붙이면, 옆 사람이 작업을 엿볼 수 없다. 일정한 시선 각도를 벗어나면 화면이 새까맣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기업들이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국외 조달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3일 코트라가 주최한 ‘미국·캐나다 정부조달 상담회’에는 68개의 업체가 참여했다. 지난해 참여업체 45곳보다 23곳이나 늘었다. 코트라 시장전략팀 권경무 차장은 “이전에는 어쩌다 한번씩 문의가 있었는데, 최근엔 일주일에 대여섯 차례는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외 조달시장은 입찰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최소 1~3년 동안의 인내가 필요하다. 2002년부터 코트라를 통해 미국 조달시장을 두드린 200개 회사 가운데 납품을 시작한 곳은 2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달시장 공략에 성공만 하면 ‘대박’이다. 구매금액이 크고 계약기간도 긴데다, 대금 결제방식도 50%를 선불로, 그것도 현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20년 하청업체 설움이 ‘20년 독점납품’ 신화로
20년 하청업체 설움이 ‘20년 독점납품’ 신화로
세화피앤씨는 애초 가전제품 포장 용도로 쓰이는 발포포장제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등 대기업의 가전공장이 국외로 나가고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쓰리엠의 개인정보 보호필름을 본 구 사장은 제조방식과 원료를 바꾸면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개발에 뛰어들었다.

20년이 넘게 하청업체 신세로 살아온 그는 자체 상표로 수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기고 제품 개발을 마친 뒤 조달시장에 도전했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2006년부터 한 달에 한번 꼴로 온갖 국외 박람회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시장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들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박람회에 참석할 돈마저 구하기 어려워질 때쯤, 그는 한 박람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달 박람회에서 바이어 한명이 관심을 표시하면서 빛이 보였다. 이때부터 코트라의 주선으로 미국맹인산업협회(NIB)와 손을 잡았다. 미국 조달시장에선 장애인 단체에 가산점을 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1년에 걸친 상담과 현장실사 등을 거쳐 올해 9월 드디어 조달시장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구 사장은 “미국 공군과도 연간 1천만달러가 넘는 계약을 추진해 최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텍엔지니어링도 1998년 폐쇄회로 텔레비전 생산업체로 출발했으나 2004년 1㎞ 전방까지 볼 수 있는 적외선카메라를 개발한 뒤 본격적으로 조달시장에 뛰어들었다. 낮에 안개가 자욱해도 카메라의 필터를 자동으로 교체해 외부인의 침투를 감지할 수 있게 했다.

2005년 4월 처음으로 미국 연방정부 정보기술 전문 조달 박람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누가 좋은 바이어인지, 사기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유은영 사장은 “서너번 정도 조달시장을 참여한 뒤에야 흐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화피앤씨가 만든 ‘개인정보 보호필름’. 컴퓨터, 휴대전화 화면 등에 이 필름을 붙이면, 정면이 아닌 각도에선 화면이 새까맣게 보여 옆 사람이 작업을 엿볼 수 없다.
세화피앤씨가 만든 ‘개인정보 보호필름’. 컴퓨터, 휴대전화 화면 등에 이 필름을 붙이면, 정면이 아닌 각도에선 화면이 새까맣게 보여 옆 사람이 작업을 엿볼 수 없다.
2007년 말 미군 해밀턴 기지에 시범사업 형태로 카메라 납품 계약을 맺고, 2008년 4월 설치 작업을 마쳤을 때 행운이 찾아왔다. 기지 외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수상한 사람을 보안카메라가 적발한 것이다. 유 사장은 “당시 부대장이 무척 좋아했다”며 “최근 정식으로 추가 주문을 할 것이라는 메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텍엔지니어링의 ‘보안카메라’. 1km 전방까지 볼 수 있는 적외선카메라를 개발해 미군 육군과 3년간 3천만달러의 납품 계약을 맺었다.
유텍엔지니어링의 ‘보안카메라’. 1km 전방까지 볼 수 있는 적외선카메라를 개발해 미군 육군과 3년간 3천만달러의 납품 계약을 맺었다.
지난 10월 초엔 미국 육군전시회를 통해 미국 육군과 3년 동안 3천만달러의 보안카메라를 납품하는 가계약을 맺고 최종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유 사장은 “조달시장은 바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그러나 한번 조달시장을 뚫으면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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