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사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해운사 단체인 선주협회와 은행들이 ‘선박구조조정기금’ 조성에 합의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 객장 뉴스 화면에 해운을 포함한 운수장비 회사들의 주식 하락 폭이 표시돼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불황→수송량 급감→해운 경영난→발주 취소 ‘연쇄반응’
‘벌크선 운임’ 사상최고 등극 6개월만에 13분의1로 ‘폭삭’
은행도 거품 기여…“자기자본 5%만 돼도 대출권유했다”
‘벌크선 운임’ 사상최고 등극 6개월만에 13분의1로 ‘폭삭’
은행도 거품 기여…“자기자본 5%만 돼도 대출권유했다”
해운·조선업도 ‘시한폭탄’
해운·조선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운·조선업의 위기가 건설업에 이어 실물-금융 동반부실의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0월 말 현재 국내 160여 해운사들이 국내외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은 모두 334척, 약 200억달러(약 28조원)에 이른다. 이런 대규모 선박 건조에 금융회사들이 프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참여하고 있어,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발주계약을 취소하거나 배를 만드는 조선사들이 도산하면 금융권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까지 상종가를 누렸던 해운업, 특히 철강·석탄과 같은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벌크선의 불황은 세계적인 실물 경기 침체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의 건설붐이 가라앉고, 금융위기에 빠져있는 미국이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대한 생산 주문을 줄이면서 원·부자재 수송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실제 벌크선의 시황을 나타내는 벌커운임지수(비디아이·BDI)는 18일 865 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올해 5월 사상 최고점인 1만1793 포인트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셈이다.
이는 화물 운임료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로, 해운업체의 매출 하락과 유동성 위기로 직결된다. 최근 중소 벌크 해운업체들의 어려움은 은행들이 제조업체의 수출입금융을 기피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신용장이 없으므로 원부자재 수입을 못하게 되고, 해운업체들도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중소 해운업체의 ㄱ아무개 사장은 “부산항 외항에 가보면 중국과 일본만 오가는 5천t급 미만의 소규모 벌크선들이 몇십 척씩 정박해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중소 영세업체를 넘어 중견업체로까지 불똥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 20위권 안에 있는 한 중견 해운업체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른 것으로 업계에선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조선업체에 벌크선을 발주해 놓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조선업체의 사정은 건설업계와 빼닮았다. 해운업체가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는 선수금으로 배값의 10~20% 정도를 먼저 주고, 나머지는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지불하게 된다. 그런데 해운업 사정이 나빠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 해운업체는 선수금을 포기하고라도 선박 수주를 취소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것이다. 조선소 입장에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된다. 업계에선 해운·조선·은행 모두 현재의 거품을 키워온 공범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선 벌크선 업황이 지난 몇년 동안 초호황을 누리면서 중소 벌크선사들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무분별하게 선박을 발주했다. 유조선을 벌크선으로 개조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 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용선과 대선을 거듭하면서 차액을 챙기는 방식으로,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계약관계를 만들어냈다. 조선업체들도 도크 건설과 선박 수주를 동시에 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매달려왔다. 은행 역시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운업체는 대개 선박값 대비 자기자본의 20% 정도를 갖고 선박을 발주한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중소 해운업체 사장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해운업체가 5%의 자기자본만 있어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선박을 건조하라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이는 화물 운임료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로, 해운업체의 매출 하락과 유동성 위기로 직결된다. 최근 중소 벌크 해운업체들의 어려움은 은행들이 제조업체의 수출입금융을 기피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신용장이 없으므로 원부자재 수입을 못하게 되고, 해운업체들도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중소 해운업체의 ㄱ아무개 사장은 “부산항 외항에 가보면 중국과 일본만 오가는 5천t급 미만의 소규모 벌크선들이 몇십 척씩 정박해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중소 영세업체를 넘어 중견업체로까지 불똥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 20위권 안에 있는 한 중견 해운업체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른 것으로 업계에선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조선업체에 벌크선을 발주해 놓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조선업체의 사정은 건설업계와 빼닮았다. 해운업체가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는 선수금으로 배값의 10~20% 정도를 먼저 주고, 나머지는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지불하게 된다. 그런데 해운업 사정이 나빠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 해운업체는 선수금을 포기하고라도 선박 수주를 취소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것이다. 조선소 입장에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된다. 업계에선 해운·조선·은행 모두 현재의 거품을 키워온 공범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선 벌크선 업황이 지난 몇년 동안 초호황을 누리면서 중소 벌크선사들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무분별하게 선박을 발주했다. 유조선을 벌크선으로 개조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 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용선과 대선을 거듭하면서 차액을 챙기는 방식으로,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계약관계를 만들어냈다. 조선업체들도 도크 건설과 선박 수주를 동시에 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매달려왔다. 은행 역시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운업체는 대개 선박값 대비 자기자본의 20% 정도를 갖고 선박을 발주한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중소 해운업체 사장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해운업체가 5%의 자기자본만 있어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선박을 건조하라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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