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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투기 부메랑’에 떠는 해운·조선업

등록 2008-11-20 21:32수정 2008-11-20 23:13

‘투기 부메랑’에 떠는 해운·조선업
‘투기 부메랑’에 떠는 해운·조선업
활황기때 벌크선 한두척 갖고도 앞다퉈 뛰어들어
빌리고 빌려주고…배 한척에 7~8개서 얽히기도
선박값 급락 ‘거품’ 꺼지며 선주회사 도미노 위기
2005년 말 한국선주협회에 등록한 선사는 64개였다. 현재 등록 선사는 164개에 이른다. 3년도 채 안 된 기간에 회원 수가 2.6배로 늘었다. 유례없는 해운업 호황이 몇년 동안 지속되자 1~2척의 벌크선을 가진 선사들이 앞다투어 ‘묻지마 투자’ 식으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중소 해운·조선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경에는 세계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 이외에 이처럼 해당 업체들의 투기성 행태도 깔려 있었다. 실제 벌크선 해운 사업은 로또만큼이나 투기성이 강하다. 장기 계약을 맺고 완제품을 운송하는 컨테이너 업황과 달리, 원자재 가격 변동이나 벌크선의 수에 따라 용선료나 운임이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이다.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벌크운임지수(BDI)가 올해 5월20일 1만1793으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여섯달 만인 11월19일 859로 93%나 폭락한 것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게다가 벌크 쪽은 선박 가격이 컨테이너에 비해 싸고 영업도 쉬운 편이라 중소업체들이 진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 투기적 계약 관계 문제는 중소업체들이 1척의 선박을 놓고 서로 복잡한 용·대선(선박을 빌리고 빌려줌) 계약 관계로 사슬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ㄱ선사가 최초의 선주로부터 하루 1만달러씩 주고 벌크선 1척을 빌렸다고 하자. 시황이 좋아지면서 용선료가 1만2천달러로 치솟으면 ㄱ선사는 화물을 실어나르는 해운 본연의 임무보다는 ㄴ선사에 1만2천달러를 받고 다시 배를 빌려주는 것이 안전하고 편하다. 계속 호황이면 ㄴ선사도 일정 기간 뒤에 ㄷ선사에 1만4천달러를 받고 배를 빌려주고 차액만 챙기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런 식으로 선박 1척에 많게는 예닐곱 개의 해운업체들이 엮이면서 거품을 만들어냈다고 업계에선 전한다.

해운업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으면서, 비싼 용선료를 주고 ‘상투’를 잡은 선사는 이미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물동량이 줄어 운항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운임도 뚝 떨어져 계약자한테 용선료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진 것이다. 상투를 잡은 업체가 용선료를 내지 못한 채 ‘배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하면, 그 다음 업체도 선박을 갖고 영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난감한 상항에 빠지게 된다. 한번 연쇄고리가 끊어지면 해운업체들이 줄줄이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다. 해운업체의 이런 사슬관계는 세계적인 관행으로, 중국 등 외국 선사들과도 엮여 있어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 되팔기 성행에 따른 거품 벌크선 운영 선사들이 투기적으로 배를 발주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가격 거품이 잔뜩 낀데다 가격 상승을 예상한 ‘되팔기’(Resale·배를 발주한 선주가 배가 완성되기 전에 다른 선주에게 이 배를 살 수 있는 권리를 파는 것) 관행도 성행해 거품이 갑자기 꺼질 경우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될지 추산하기 힘들다.

17만톤 케이프급(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과 남미 케이프혼을 운항할 수 있는 대형 선박) 벌크선의 중고가격은 2006년 하반기 6천만달러 후반대에서 올해 1억5천만달러까지 치솟았다. 당연히 투기가 성행했다. 우선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이나 국내 중소 조선소들에 발주되는 벌크선 물량이 크게 늘었다. 신규 조선소는 배 값이 좀 싸기 마련이어서 배가 무사히 완성됐을 경우 수익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되팔기도 성행해, 배 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일부 선주들은 이미 발주된 배에 대한 ‘권리’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예컨대 한 선주가 7천만달러에 발주해 놓은 배를 다른 선주가 7500만달러에 사는 식이다. 특히 완성을 눈앞에 둔 배에는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급등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이런 되팔기는 대부분 물밑에서 이뤄져 실상을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선박 발주 물량의 10~20%는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되팔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거품 붕괴의 파장은? 문제는 배 값이 급락하면서 이런 구조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 중고선가나 신조선가(신규 선박 발주 가격)가 급락하진 않았지만 이는 워낙 거래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강남 아파트가 거래 없이 호가만 유지되고 있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것은 선박 발주 취소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형 해운사인 겐코는 최근 5억6천만달러에 주문한 벌크선 6척의 주문을 취소했다. 선수금 5300만달러는 그냥 날렸다. 배가 만들어지더라도 손해를 볼 게 뻔해 내린 결정이다. 올해만 이런 식으로 154대의 벌크선 발주가 취소됐다.

거품이 급속하게 꺼질 경우에 생길 피해를 현재로선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높은 값에 투기 목적으로 배를 산 선주회사들의 부도가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이용인 이형섭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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