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아하 그렇구나 / 은행 대손충당금이란
은행들의 분기 실적 발표에 앞서 자체 추산한 이익 전망을 내놓던 증권사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올해만큼은 잠잠합니다. 은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애널리스트들이 실적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이는 다름 아닌 대손충당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에 대손충당금을 미리 쌓아놓고 가느냐, 아니면 나중에 쌓느냐에 따라 지난해 4분기 이익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대손충당금은 ‘이미 나간 대출 가운데 떼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큼 미리 쌓아놓은 준비금’입니다. 요즘처럼 경기 침체로 대출 부실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선 은행들이 이익 중 상당 부분을 충당금으로 옮기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충당금을 쌓는 데도 일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특히 은행은 여타 금융회사나 일반 기업보다 구체적인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제받습니다. 은행의 생사는 개별 기업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전체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적지 않기 때문이죠. 우선 은행업 감독규정에 나와 있는 이 기준을 살펴보면, 대출 채권의 종류와 회수 가능성에 따라 적립률이 대출액의 0.85%(일반 기업 대출, 정상 여신 기준)에서 100%(모든 대출, 추정손실 기준)까지 차등화돼 있습니다.
예컨대 신용카드 관련 대출, 가계 자금 대출, 건설업·도소매업·음식점업 등 경기민감 업종 기업 대출, 일반 기업 대출 순으로 충당금 적립률이 낮습니다. 이는 신용카드와 가계 자금 대출이 일반 기업 대출보다 부실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대출 채권이라도 연체가 없는 채권은 ‘정상’, 1개월이면 ‘요주의’, 3개월 이상이면 ‘고정’,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면 ‘회수의문’, 사실상 부도난 채권은 ‘추정손실’ 등 5등급으로 분류한 뒤, 각 등급에 따라 다른 적립률을 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적립률은 뒤로 갈수록 올라갑니다.
은행들의 충당금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2006년엔 4조8천억원, 2007년엔 4조5천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는 무려 두배 이상 늘어난 9조9천억원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그만큼 대출 채권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최근 3~4년 동안 무리하게 대출을 늘렸다가 경기 침체기를 맞아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고 충당금 적립 금액만 놓고 은행의 건전성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은행들은 충당금을 조금만 쌓는 방법으로 이익을 부풀리는 경우도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유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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