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아하 그렇구나
외환시장을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이 다시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하순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게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탓이었다면, 이번 불안의 빌미는 미국보다 더 먼 곳, 동유럽에서 주로 비롯되고 있는 듯합니다.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최근 들어 ‘디폴트’(default)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한때 ‘잘나간다’던 러시아와 아일랜드의 디폴트 위험마저 거론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듣게 되는 오싹한 용어입니다.
디폴트란 특정 국가가 외국에서 빌려온 빚을 계약된 상환기간 안에 갚지 못해 부도에 이르는 상황을 일컫습니다. ‘채무불이행’이라고도 합니다. 기업이 이자 지급이나 원리금 상환을 계약대로 이행할 수 없을 때도 이 말을 씁니다. 흔히 ‘모라토리엄’(moratorium)과 혼동하기 쉬운데, 이는 빚의 상환을 일시적으로 미루는 ‘채무지급유예’입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경제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이뤄지는 조처입니다.
동유럽의 디폴트 위험이 우리나라까지 위협하는 것은 우선 서유럽 은행이 중간에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유럽 은행들이 동유럽 주요국(러시아,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 빌려준 돈은 9400억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2004년 이후 경기 호황기에 대출을 많이 늘렸고, 동유럽 국가들은 이 돈으로 생산설비를 늘렸습니다. 외환위기 이전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돈을 빌려 경제를 돌리는 나라들 처지에선 돈줄 막히는 게 치명적입니다. 나아가 올해엔 외국은행들이 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서유럽 쪽에서 많은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온 유럽 자본(주식·채권 투자, 은행간 대출 등 포함)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2천억달러에 이릅니다. 서유럽 은행들이 동유럽에서 큰 손실을 봐 자금 부족 상태에 빠지면 한국에서도 돈을 빼내갈 것입니다.
물론 금융시장의 불안 재연이 동유럽 요인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기부약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실물경제가 생각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동유럽 요인 또한 위험도가 높아졌다는 것과, 실제 디폴트에 빠지는 것은 다릅니다. 유럽중앙은행 등 유럽연합 쪽의 대처능력에 따라 앞으로 금융시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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